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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가 싫으시면 어린이집을 옮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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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가 싫으시면 어린이집을 옮기세요”
  • 구로타임즈
  • 승인 2009.12.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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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24
‘각 교실마다 설치된 CCTV를 감상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새로 오픈하였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안내문이 왔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어린이집에서 우리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었는데 인터넷으로 볼 수 있으니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우리 아이 얼굴이나 노는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 나가게 되면 부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요즘엔 주소나 전화 번호 같은 개인 정보가 유출돼도 난리인데 이건 아이 얼굴이 그대로 유출되는 셈입니다.

요즘 아무리 CCTV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고 해도 그렇게 촬영된 영상은 꼭 필요한 기관에 한 해 아주 까다로운 법적 절차를 거쳐 볼 수 있게 되어 있지 이런 식으로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인터넷을 통해 화면을 공개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누가 나쁜 맘이라도 먹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어느 어린이집에 어떤 아이가 있구나하는 것을 알아낸 다음 그걸 아주 나쁜 목적으로 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예전에 막가파는 현대백화점 고객 명단을 빼돌려서 범죄를 저질렀었습니다. 요즘엔 정부부처 홈페이지도 마구 해킹되는 시대입니다. 외부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해 어린이집은 낮에 문을 잠가놓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교실 모습을 상영한다니, 안심이 되는 게 아니라 더욱 불안해집니다.

두 번째로 CCTV를 통해 우리 아이 뛰어노는 걸 보다 보면 아무래도 작은 불만이 생기기 십상일 텐데 그래서 어린이집에 부모님들이 전화를 하기 시작하면 부작용이 더 크겠다 싶었습니다.

또한, CCTV를 작업장 안에 설치했다가 정신질환, 위장 장애 등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시 폐쇄하기로 결정했던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만약 CCTV를 교실마다 설치하면 거기서 일하시는 선생님들이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그런 스트레스를 안고 아이를 대하면 과연 제대로 된 보육이 될까 걱정이 됐습니다.

게다가 항상 CCTV같은 걸로 누가 지켜본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라는 아이들, 그러니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라는 아이들이 과연 창의적인 사람, 자기주도적이며 독립적인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더욱 걱정이 됐습니다.

이런 걱정 때문에 물어물어 구로구와 서울시청에 전화를 했습니다. 어린이집 밖은 모르겠는데 안에 설치하는 건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느냐면서 한참 동안 제 걱정을 설명하니까 서울시 보육담당관실의 담당자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싫으시면 어린이집을 옮기세요.”

다른 곳도 아니고 보육을 담당하는 부처의 담당자가 이런 얘기를 하다니 너무 화가 나서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가 끊어버렸습니다. 자꾸 속상하고 눈물이 납니다.




◈ 이 기사는 2009년 12월 7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2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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