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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야’ 보다 ‘아빠의 마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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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야’ 보다 ‘아빠의 마법’으로
  • 구로타임즈
  • 승인 2009.12.1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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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24] 아이가 무서워 할 때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아오는데 아이가 이럽니다.

“아빠, 근데 아파트가 막 무너지면 어떡해?”
“아파트가 무너지면? 그럼 재빨리 피해야지”
“그래도 계속 무너지면?”
“에이, 그럴 리 없어. 아파트가 왜 무너지냐?”
“그래? 그래도 이렇게 이렇게 무너지면 어떡해?”

손동작까지 크게 위에서 아래로 휘저으며 미루는 참 별 걱정을 다 했습니다.

그 날 밤 어떻게든 안 자고 조금이라도 더 놀아보려고 아이는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씻기고 옷 입히고, 방 불을 다 껐는데도 어둠 속에서 계속 꼼지락 거립니다. 게다가 뭐라고 계속 웅얼거리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미루야, 방금 무슨 소리 들었어?”
“아니. 무슨 소리?”
“밖에 누가 왔나봐.”

이 말에 미루는 긴장한 목소리로 “늑대?”이럽니다.

“맞아, 늑대. 너 이제 안 자고 계속 떠들면 늑대가 방으로 들어올지도 몰라. 그러니까 빨리 자자.” 이 말을 듣고 아이는 가만히 누워서 꼼짝 않고 있더니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재우는 데는 이런 방법도 가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걱정이 좀 되는 것도 있습니다. 자꾸 아이에게 ‘공포감’을 심어줘서 아빠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 하는 게 맞나 싶은 겁니다. 아이 엄마가 열심히 육아서를 읽는데 옆에서 살짝 훔쳐봤더니, 아이가 무서워할 때는 그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수준에 맞게 대응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파트가 무너지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할 때는 ‘아파트는 절대 무너지지 않아’라는 어른 같은 대답이 아니라, ‘아파트가 무너지는 게 걱정이구나. 아빠가 보이지 않는 마법의 옷을 입혀줄게. 그러면 아파트가 무너져도 하나도 안 다쳐.’ 같은 식이 훨씬 적절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하기는커녕 없는 늑대를 만들어서 공포감을 심어줬으니 몹쓸 아빠입니다.

“근데 아빠, 나 무서워.”

또 다른 날 저녁. 침대에 누웠는데, 아이가 자꾸 품으로 파고듭니다.

“왜 그래, 뭐 무서운 게 생각났어?”
“응, 늑대가 올까봐 무서워”
“그래? 아빠가 늑대 이기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정말? 어떻게 이기는데?”

책에서 본 대로 대답할 기회입니다.

“일단 미루한테 마법의 옷을 입혀줄게. 그리고.”

말을 하는 도중에 미루가 두 손을 모아서 앞으로 뻗으며 “이렇게 똥침을 할 거야?”라고 합니다. 마법의 옷 같은 그럴싸한 건 관심이 없고, 하필이면 똥침이랍니다.

“어, 그래. 그렇게 하면 늑대가 못 올 걸?”
“그럼, 손을 이렇게 완전히 쭉 뻗어서 똥침?”
“응”
“그러면 늑대가 ‘아야’ 하면서 도망가?”
“그럼, 도망가지.”

겨우 안심을 한 아이는 그제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보다 그걸 누그러뜨려주는 방식이 아무래도 나을 것 같습니다.




◈ 이 기사는 2009년 11월 30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2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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