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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칭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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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칭찬의 힘
  • 구로타임즈
  • 승인 2009.12.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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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_ 23
 저녁밥을 아이와 둘이 먹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이리 저리 소방차를 밀고 다니면서 노는 사이 국을 푸고, 반찬을 꺼냈습니다. 밥을 적당히 그릇에 담고 "미루야, 밥 먹자"를 세 번 쯤 외쳤습니다.

 아이는 그제야 소리를 들은 듯 소방차를 부엌 쪽으로 "부릉부릉"하면서 끌고 옵니다. "자동차는 안 되는 거 알지?" "응, 근데 여기다 이렇게 놓으면 안될까?" 식탁 한 쪽 구석에 자동차를 굳이 세워놓으려고 합니다. "알았어. 그 대신 밥 먹는 동안에는 자동차들한테 거기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미루 넌 밥만 먹어."

 밥 한 숟가락과 장조림 하나를 겨우 집어 먹습니다. "아빠, 이거 봐. 웃기지." 양손을 모으고 알듯 말듯 한 모양을 만들더니 웃기지 않느냐고 합니다. "응, 웃기네."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근데 왜 안 웃어?" 역시 진실이 담기지 않은 대답은 곧바로 공격을 당합니다.

 그래서 다시 "히히, 웃기네"라고 말했더니 미루가 연달아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건 어때? 웃겨?" "미루야, 어서 밥 먹자. 응?" "이거는?" "밥 먹자니까." 참다 못 한 저는 결국 아이에게 꽥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너 정말 밥 먹을 때마다 매번 이럴 거야?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 조용히 하고 빨리 밥 안 먹을래?"

 그 이후로 벌어진 상황은 안 봐도 뻔합니다. 아이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울고, 아빠는 소리를 더 지르다가 금방 마음 약해져서 아이를 달래고, 아이는 그래도 마음이 안 풀린다고 말하고 아빠는 더 달래는 식이었습니다.

 사실 그 전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해결은 다르게 했었습니다. 그때는 아이 엄마와 같이 있던 터라 알고는 있지만 평소에 잘 안 쓰던 방법을 쓸 수 있었습니다. 아이에겐 들릴락말락하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속닥거리는 겁니다. 마치 아이 몰래 두 사람만 대화를 하는 것처럼 말이죠. "미루는 정말 혼자서 밥 잘 먹지?" "맞아, 맞아. 혼자서 얼마나 밥을 잘 먹는지 몰라." 둘이 소곤거리는 걸 들은 미루는 느닷없이 숟가락으로 밥을 푹푹 퍼 먹기 시작했습니다. 젓가락질도 잘 합니다. 입을 우아아악 벌린 다음에 밥과 반찬을 우겨 넣는 걸 보면서 우리는 "그러게 말이야. 미루는 정말 밥을 너무너무 잘 먹어" 했습니다. 역시 칭찬이 우격다짐보다 힘이 셉니다.




◈ 이 기사는 2009년 11월 23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2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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