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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꼭 잘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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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꼭 잘 지켜"
  • 구로타임즈
  • 승인 2009.11.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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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21 _ 무단횡단
 아이를 친구 집에 맡기고 너무 늦게 찾았습니다. 날씨도 쌀쌀해서 어서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합니다.

 집에 빨리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야할 것 같아서 두리번거리는데, 바로 건너편에 정류장이 보입니다. 차가 오는지를 살핀 다음 아이를 안고 급히 길을 건넜습니다. "아빠, 차 조심해."

 아, 이런 실수를 했습니다. 차 조심하라는 아이의 말을 듣자마자 제가 무단횡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늦은 밤이라 차는 거의 없고, 큰 길도 아니라서 사실 별 위험은 없었지만, 평소에 언제나 초록불이면 건너고, 빨간불이면 서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을 하고, 초록불이 켜져도 일단은 양쪽을 잘 살핀 다음에 손을 들고 건너야 한다고 했는데, 아빠 말에 신뢰가 깨지는 순간입니다.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규칙이나 도덕 같은 것은 평소에 부모가 가르친 대로 잘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아이가 혼란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날 저는 항상 가르쳐왔던 규칙을 스스로 깨버린 것입니다. 급히 사과를 했습니다.

 "미루야, 아빠가 잘못했어.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건너버렸네."
 "길은 횡단보도로 건너야지."

 역시나 아이는 무단 횡단하는 아빠를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 싶어서 차 조심하라고 한 게 맞습니다. 거듭 사과했습니다.

 "미루야, 정말 미안해. 아빠가 횡단보도로 건넜어야 했는데" 하지만 한 두 번의 사과보다도 무단횡단을 한 '행동'의 효과가 훨씬 컸나 봅니다.

 한참 동안 안 오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다 못해 집까지 걸어가기로 해서 걷고 있는데 두 번째 횡단보도가 나왔습니다. 미루가 이야기합니다.

 "아빠!"
 "응?"
 "그냥 건너자. 차 안 오자나."

 미루를 꼭 안아주면서 다시 한 번 사과를 했습니다.

 "미루야, 아빠가 진짜 아까 잘못했지. 횡단보도로 건넜어야 되는데."

 그때 어떤 남자분이 빨간불 신호등을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더니, 이어진 다른 횡단보도를 역시 빨간불인데 건너갑니다.

 "아빠, 저 아저씨 이렇게 쭈욱 저렇게 쭈욱. 그냥 가버리네."
 "그러게 말이야. 우리는 앞으로 꼭 신호 잘 지키자. 응?"
 "알았어."

 초록불이 켜지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집 앞까지 다 왔습니다. 이제 마지막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됩니다.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기 직전에 남녀 한 쌍이 길을 건너기 시작합니다. 그걸 보더니 미루가 또 한마디 합니다.

 "저 아줌마 아저씨들, 빨간불인데 그냥 팍 들어오네."

 아빠가 한 번 규칙을 어기니까, 그런 모습들이 더욱 눈에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미루야 우리 앞으로 신호 꼭 잘 지키자. 알았지?" 이 말에 미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응, 아빠도 꼭 잘 지켜."





◈ 이 기사는 2009년 11월 9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2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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