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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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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야기
  • 구로타임즈
  • 승인 2009.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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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18
 좀 지나긴 했지만 추석 얘기를 잠깐 하려고 합니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귀성객들의 선물꾸러미는 다소 가벼워졌지만 설렘이 가득한 표정에서는 행복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움직이다가 들은 어느 방송 기자의 멘트였습니다.

 설과 추석, 일 년에 꼭 두 번씩은 반드시 듣는 멘트입니다. 열이 확 뻗쳐올라왔습니다. 추석에 집에 내려가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할 때부터 다시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감출 수 없는 행복함' 같은 건 사실 별로 없습니다.

 이런 감정은 결혼하고 나서 더 커졌습니다. 그 전에는 명절이라고 해봐야 무덤덤하게 지내고, 오랜만에 부모님 뵙는 재미도 없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까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임신을 했어도 추석에 내려와야지, 무슨 말이야." 3년 전에 부모님이 아이 엄마에게 하셨던 이야기입니다. 아이 엄마는 그때 어떤 구간은 좌석에 앉아서 대부분 구간은 입석으로 시골에 내려갔다가 올라왔습니다. 올라오는 KTX 바닥에 주저앉아서 배가 당긴다면서 울었습니다.

 매년 하루 종일 전 부치기가 반복됐습니다. 어떤 남자도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거지를 하겠다고 벌떡 일어선 저를 보면서, '네가 그러면 우리가 무슨 꼴이 되느냐'고 여러 명의 '남자 친지'들이 소리쳤습니다. 음식 차리는 거 같이 하자고 들어간 부엌에서 어머니는 "빨리 안 나가!" 하고 소리치셨습니다. 이런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는 행복감'은 대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추석이 끝나고 아이 엄마는 일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에 4일간 갔다 왔습니다.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더니 부산에 가서는 자꾸 문자를 보내 고맙다고 합니다. 명절 때마다 고생하는 아이 엄마한테 이런 선물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별로 고마워 할 일이 아닙니다.

 "이상한 아빠야, 그치? 밥을 한 번도 안 해봤대." 아이와 둘이서 지내면서 본 DVD에서 "나는 밥을 한 번도 안 해봤는데"라는 대사가 나오자 아이가 한 말입니다.

 밥은 늘 엄마와 아빠가 둘 다 하는 걸 본 미루는 그런 인식이 확실히 잡혔습니다. 그래서 미루는 자동차 놀이도 미친 듯이 좋아하지만, 갑자기 소꿉놀이도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세상의 불평등과는 다른 습관을 가진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기사는 2009년 10월 19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2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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