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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더 절실한 '보살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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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더 절실한 '보살핌'
  • 구로타임즈
  • 승인 2007.01.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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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함께 돌봐야할 아이들, 결식아동 ⓛ 식권교환제도의 실태
순호(가명, 남, 초등학교5)는 김치를 좋아한다.

또래 친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피자, 스파게티 등을 꼽을 때, 순호는 엄지손가락까지 동원해가며 “김치가 젤루 맛나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순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숟가락 위에 엄마가 먹기 좋게 찢어서 얹어주는 알싸한 김치를 맛본지 오래다.

대신, 순호는 김치볶음밥을 먹는다. 집 가까이에 있는 분식집에 전화를 걸어 “식권이요”라고 말하면 계란 반숙이 얹힌 김치볶음밥이 단무지와 함께 배달돼 온다. 아빠랑 형이랑 동생이랑 함께 사는 순호는 매일 먹는 김치볶음밥에 그래도 ‘김치’가 듬뿍 들어가 있어 좋다고 말한다.

- 잘못된 식습관 영양부실 우려
- 지역사회지원시스템 시급

구로구에서 순호처럼 겨울방학 때 식권을 사용해 밥을 먹는 아이들은 모두 1,783명에 이른다. 흔히 ‘결식아동’이라 불리는 이 아이들은 방학 때면 정기적으로 동사무소에 들러 식권을 타다가 구에서 정해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식권 1장의 값은 3천원. 백반 한 끼 값도 안 되는 돈이지만 구로관내 몇몇 마음 좋은 식당 주인들은 4천~5천원짜리 메뉴를 흔쾌히 내놓는다. 하지만 이러한 베풂도 아이들 사는 집 가까이 위치한 지정식당이 특정 메뉴만을 취급하는 곳일 때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밥만 먹여주면 끝?

선준(가명, 남, 초등학교3)이는 집 가까이 위치한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켜다 먹는다. 처음 얼마간은 자장면과 짬뽕 등 이것저것 시켜다 먹어보았지만 죄다 물려버려서 이제는 볶음밥 한 가지만 먹기로 했다. 중학교 3학년인 형도 식권을 받지만 매 끼니마다 식권을 쓰지 않는다. 형은 대신 선준이가 “맛난 거 먹고 싶다”라고 조르는 날 모아둔 식권을 탈탈 털어 탕수육을 배달시키곤 한다.

지역의 복지 전문가들은 선준이와 같은 아이들의 경우 편식습관에서 오는 영양불균형을 가장 걱정한다. 식권교부제도의 경우 도시락배달제도에서 불거질 수 있는 ‘부실도시락’이나 ‘배달사고’ 등의 위험은 줄지만, 대신 혀끝에 단 음식들만 골라먹는 아이들의 잘못된 식습관은 무관심 속에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구로푸른학교 임윤희 준비위원장은 “결식아동 대부분은 부모의 관심과 손길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식권을 받더라도 형제들과 먹든지 아니면 혼자서 먹는 경우가 많다”며 “밥만 먹인다고 능사가 아니라 올바른 식습관을 가르치고 고른 영양섭취를 하도록 이끌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 동 지정식당 단 2곳

구로관내 식권을 사용할 수 있는 식당은 모두 78개소이다. 이는 동당 평균 4개소 꼴로, 2년 전 38개소(2005년 1월 기준)였던 것에 비하면 수치상으로는 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하지만 이들 식당 현황을 고른 영양섭취라는 측면에서 살펴볼라치면 낯이 붉어지는 게 사실이다.

지정식당 78개소의 40%(31개소)는 김밥 등을 취급하는 분식집이다. 그리고 30%(23개소)는 중국집, 14%(11개소)는 빵집, 8%(7개소)는 패스트푸드점 등이다. 한참 자라날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섭취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지에 대해 회의가 들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분식집과 중국집 단 두 집만 지정돼 있는 A동의 경우 100여명이 넘는 아이들의 선택폭은 좁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도 집 가까이 지정식당이 있는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일로, 식당 위치와 동떨어진 지역의 아이들은 한참을 걷거나 마을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구로자활후견기관에서 운영하는 ‘다우리반찬’(구로2․3․4, 가리봉2)과 다양한 야채류를 섭취할 수 있는 웰빙보리밥부페(구로6동) 그리고 값에 상관없이 정갈하고 푸짐한 음식을 제공하는 일부 식당들이 참여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명단에서 구로관내 소위 ‘잘나가는’ 유명음식점들의 이름을 찾기 힘든 건 씁쓸한 뒤끝을 남긴다.

- 필요한 건 관심과 실천

구로관내 식권을 사용할 수 있는 지정식당은 왜 78개소뿐일까?

구에 따르면, 이들 지정식당은 한국음식업중앙회 구로구지회에서 추천을 받거나, 구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직접 섭외한 곳들이다. 일단 섭외가 이뤄진 곳은 위생 점검에서 합격을 받아야하고, 만일 훗날 이용해본 아이들이 불편해하거나 꺼려할 경우 바로 제외시킨다는 게 구 담당부서의 설명이다.

문제는 구로관내 영업 중인 음식점들을 대상으로 참여를 독려해도 실제 참여의사를 밝히는 곳은 앞서 밝힌 분식집과 중국집 등 소규모 점포들뿐이라는 데 있다.

한국음식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큰 음식점들의 경우 사람들로 북적대다보니 아이들도 방문하기를 싫어하는데다 배달시스템도 없어 참여를 안 하는 것 같다”며 “참여하고 있는 업주들의 경우에도 식권이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든가 한꺼번에 쓰이는 등 결식아동 돕기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구로구의 결식아동 대부분은 불편한 마음에 식당을 직접 찾아가 밥을 먹기보다는 집에서 배달시켜 먹는 쪽을 택하고 있다. 때문에 음식메뉴는 더욱 한정될 수밖에 없고, 음식을 통한 정서교류 또한 이뤄지지 못한다.

구로지역 지역아동센터의 한 담당자(여, 40대)는 “일부 아이들은 식권을 두고 ‘거지표’라고 말할 정도로 식권 사용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며 “창피한 마음에 집에서 배달 음식만 시켜먹다 보니 먹는 음식은 한두 가지 뿐인데다 아이의 정서 또한 메말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결식아동은 사회의 책임

구로구의 식권교부제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것에 대해 지역의 복지 전문가들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일부 주민들의 잘못된 인식과 구당국의 부족한 복지마인드에서 찾고 있다.

결식아동의 문제를 부모의 무능력 탓으로 돌리거나 단순한 경제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식사 제공의 측면만 강조하기보다는 아이들과의 교감과 소통 그리고 교육을 현행 제도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 고민과 모색이 필요하다는 게 복지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지역 복지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 관계자(여, 40대)는 “결식아동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돌봐야할 우리의 아이들”이라며 “이 문제는 부모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구당국은 행정력과 예산을 우선 투입해 지역사회의 물적, 인적 자원을 활용한 지역사회 지원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희정 ․ 김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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