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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손 잡아주던 친구의 손, 그렇게 따뜻한지 이번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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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손 잡아주던 친구의 손, 그렇게 따뜻한지 이번에 알았다.”
  • 구로타임즈
  • 승인 2006.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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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민규 (우신고 ) 우신고 사제동행을 마치고
8월 4일 집에 도착하자 마자 갈증에 차가운 물을 한번에 다 마셨다. 생각해보니 물을 넘기는게 힘들어서 물조차 마시지 못했던 때가 떠오른다. 집에서 편히 쉬다 보니 동강에서의 기억이 알콜 처럼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으므로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잊으려고 해도 잊을수 없는 기억들이 있다. 그것이 좋든 싫든 그 기억들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이번 사제동행(이하 동행)으로 나는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얻었다. 8월 1일 부터 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첫 날에는 전 날 잠자리에서부터 긴장해서였는지 목이 아팠다. 하지만 예미 초등학교에서 텐트치고 저녁만 먹는 정도라 다행이었다. 학교는 소박하고 좋아보였다. 하지만 화장실이 푸세식이었고 불도 켜지지 않아서 투덜 거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배부른 투정이었다.

밤에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참가한 학생들 모두 서먹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해주신 말들은 왜 이번 동행에 참가 하게 되었나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러 왔을까.” 생각 해보게 될 거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나중에 정말 그 생각을 안할 수 없었다.)

둘째 날에는 익숙치 못한 시간에 일어나느라 적응이 안되었다. 아! 드디어 걷기 시작하는 구나. 처음은 설레임으로 시작했다. 길고 어두운 고성 터널을 지날 때까지도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거북이 마을까지 도착했을 땐 지쳐있었다.

그래도 앞으로의 일에 비하면 아무일도 아니었다. 거북이 마을에서 잠시 쉬고 칠족령으로 올라 가게 되었다. 내가 보기엔 온통 풀들 뿐인데 선생님들은 어떻게 길을 그렇게 잘 찾으시는지 처음에는 신기해 하며 따라 갔다.

하지만 점점 더 경사가 가파른 곳을 오르게 되었다. 땅은 약간 축축했고 돌은 미끄러웠다. 한번 크게 미끄러졌다. 떨어질까봐 겁이 났다. 그렇다고 다시 내려 갈 수 없었다. 빨리 정상에 도착하길 바라며 걸었다. 다 도착했다고 말하는 선생님의 말을 계속 믿고 또 믿고 싶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털썩 주저 앉았다. 산악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산 위에서 보는 동강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절경이었다. 하지만 감동을 맛보는 것도 잠시였다. 오르면 내려와야 했다. 다른 사람들과 반대로 나는 내려오는 일이 더 힘들었다.

맨 뒤로 뒤쳐진 나를 조인호 선생님이 뒤에서 도와주셨다. 생각해보니 내가 험난한 칠족령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손을 잡아주던 친구 그리고 내 뒤에서 나를 지켜봐주시던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친구의 손이 그렇게 따뜻한 것은 이번에야 알았다. 마음도 따뜻해졌다. 칠족령을 넘어서 먹던 쭈쭈바와 나무 그늘에서 잔 낮 잠은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이었다.

쉬고 나서 다시 걸을 때 어느 돌들만 가득한 곳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 그때는 뜨거운 태양과 달궈진 돌들을 다시 걸어서 돌아 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그 때 백태현 선생님이 말씀 해주셨다. 화가 난다고 다른 사람에게 화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른 사람도 힘들고 지쳐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화내지 않았다. 나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참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혼자인게 편하게 되었다. 남들은 나에게 요구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칠족령을 넘고 길을 잘못 들면서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불편하고 요구 당할 지도 모르지만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도와주며 이끌어 줄 수 있는 값진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째 날에는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둘째 날부터 잡힌 물집이 나를 너무 고통스럽게 했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오자가 되긴 싫었다. 발에 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붙였다. 붙인 걸 뗄 때도 아팠다. 걸을 때는 얼마나 아픈지 울고 싶었다. .

가수리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발을 물에 담궜다. 물이 차가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조인호 선생님이 나에게 차를 타고 이희면 선생님을 도와 드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차를 타려고 기다리던 몇 분간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너무나 힘들어서 나에게 “힘들지 않아. 아프지 않아.” 계속 혼자말 하며 걸었던 순간, 나이가 어린데도 포기 하지 않고 걷는 동녘이, 그리고 나 처럼 힘들 선생님과 친구들...

나는 타지 않겠다고 선생님께 말씀 드렸다. 걱정해주시는 마음만은 감사 했다.

또 다시 걸으면서 깨달은 건 내가 거의 밑만 보고 걷고 있는 것이었다. 둘째 날 주위를 둘러 보며 걷던 여유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후에 민박집을 향해 걸을 때는 앞 행렬과 뒷 행렬에서 떨어져서 혼자 걸었다. 주저 앉고 싶었다. 지나가는 차를 잡고 싶었다. 쓰러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걷는 것이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힘든 순간들은 나 자신을 강하게 해 준 값진 경험이었다.

밤에는 평가회가 있었다. 촛불을 한 사람씩 켰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에 대해 각자 생각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나 끝나고서야 알았다. 서로가 몰랐던 것을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예전에 나는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랬다. 하지만 말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더욱더 값진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거짓이나 꾸밈없이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다보니 정말 좋은 사람들과 나는 걸어 왔다는 걸 느꼈다. 사람들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날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마지막 날 나의 발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어젯밤 평가회를 통해 얻은 힘으로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말고 발에 물집 잡힌 친구들이 여럿 보였다. 그 친구들도 잘 참아주고 있었다. 마지막은 경건한 마음이 든다. 힘들어서 보지 못했던 풍경도, 계속 흐르고 흐르던 동강도, 낙석에 주의 해야 했던 도로도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 왔던 곳들도 나의 기억속에만 남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아쉬움을 동강에 떠내려 보내며 시내 목욕탕까지 걸어갔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같이 간 목욕탕은 좁아도 정겨웠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길고 긴 시간을 지나 동서울에 도착해서 나의 동행은 끝났다. 끝난 동행에서 나는 한가지 미안한 점이 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나 혼자도 감당하기 힘들어서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못한 것이다. 다음에는 다른 사람도 도와주고 배려 해 줄 수 있는 성장한 내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힘들게 걷고 있는데 쉬지 않고 흐르던 동강을 보며 괜히 야속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동강도 또 가보고 싶어 지겠지. 동강과 함께 흘렀던 3박 4일을 나는 잊지 못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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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7일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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