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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대한민국’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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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대한민국’은 어디에?
  • 송희정
  • 승인 2006.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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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구로주민들 안팎]천왕주민들 시장관저 앞 노숙농성
“4년 동안 그렇게 얘기했으면, 검토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온 나라가 월드컵 16강 진출의 기대로 술렁이던 지난 13일 저녁 7시. 서울시장 관저가 눈앞에 바라다 보이는 성북구 성북동 혜화문공원 노숙농성장에서 만난 천왕동생존권수호대책위원회 한만선(56) 위원장이 깊은 한숨과 함께 토로한 말이다.

천왕동 주민인 한 위원장과 강준수(55)씨, 정의령(52)씨는 시청 앞에서 공동기자회견<관련기사 구로타임즈 157호 12일자 7면>이 있은 직후인 지난 12일 낮 12시30분부터 은평․강일지구 주민 10여명과 함께 서울시의 공영개발 철회를 내걸고서 이곳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고령의 나이로 하루식사를 한 끼로 줄이고, 노상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 주민들이 내놓은 공통 요구안은 한 가지다. 서울시가 도시개발 관련 절차를 지키지 않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으니 모든 것을 개발 전 단계로 되돌려 놓으라는 것이다.

여기에 천왕동 주민들은 한 가지를 더 보탰다. 바로 공영개발지구 옆 부지에 추진되고 있는 영등포교정시설 이전사업을 천왕동이 아닌 구로구 바깥으로 추진하라는 것.

얼마나 억울했으면 지난 4년간 한 주도 빠짐없이 매주 월요일 구청 앞에서 교정시설 이전 반대 집회를 했겠습니까. 그렇게 줄기차게 반대하고 싫다고 했으면 다시 검토를 해야지, 구청, 시청, 정부 모두 한통속이 돼서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세우기나 하고...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한 위원장은 힘 센 사람들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현실을 개탄하며, 천왕동 주민들의 바람이 인간의 보편적 권리인 주거권과 행복권에 맞닿아 있음을 오랜 시간 설명했다.

이곳 주민들이 지난 4년 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교정시설 이전사업의 문제점은 대략 세 가지 정도다. 우선 제대로 된 공청회 한 번 없이 처음부터 주민들은 철저히 배제된 채 교정시설 이전사업이 추진됐다는 것. 여기에 주거지에서 들어낸 교정시설을 다시 주거지로 이전하는 사업방식은 훗날 또 다른 민원을 야기할 수 있기에 명백한 국가예산 낭비라는 지적이다. 마지막은 원주민들의 주거권에 대한 일체의 고려 없이 단지 인구수가 적다는 이유로, 이전사업 관련 모든 절차가 정치논리에 의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주민 한숙희(50) 씨는 “혹자는 우리를 두고 그저 보상 가를 높게 받으려는 외지 투기꾼들 내지 지역이기주의자들이라고 손가락질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본인들은 편하겠지만 우리 천왕동 주민들은 속이 썩을 대로 썩어들어 간다”며 “집회에 참여하는 주민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것은 물론 교정시설부지와 공영개발지구 쪽 모두에 골고루 땅을 갖고 있는 실제 주민들”임을 강조했다.

이날 저녁 8시30분경, 혜화문공원 주변으로 완연한 어둠이 깃들자 천왕․은평․강일지구 주민들은 하나둘 정자 아래와 노상으로 흩어져 돗자리와 모포로 몸 뉘일 자리를 마련했다.

“지금이 여름이어도 밤공기는 서늘해서 누워 자다보면 바닥의 찬 기운이 뼈 속까지 스며듭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데 나이 들어 이게 지금 뭔 짓인지.” 시멘트 맨 바닥 위에 돗자리와 모포를 깔고 이제 막 누울 채비를 마친 한 강준수 씨가 전한 말이다.

한 떼의 붉은 옷 무리가 “대한민국”을 외치며 지나갔다. 그들의 ‘대한민국’ 함성에 '대한민국‘을 향한 이들의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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