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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서 호평 <돌속에 갇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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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서 호평 <돌속에 갇힌 말>
  • 김철관
  • 승인 2005.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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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17년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 영상화한 나루감독
“당시 기억들이 악몽이었어요. 언젠간 영상으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5년 만에 작업이 끝났네요.”

지난 87년 12월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돌 속에 갇힌 말들>을 제작해 현재 상종가를 올리고 있는 나루(38) 감독의 첫 마디다.

지난 87년 12월16일부터 18일까지, 2박3일간 실제 있었던 대통령선거 투표와 관련해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안 시민, 학생들은 항의시위를 진행한다. 항의농성 중 군사정권의 공권력 투입으로 인권을 유린한 사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다큐멘터리 영화 나루 감독의 <돌 속에 갇힌 말>(70분)이 현재 영화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17년전 그날을 정확히 알리고 싶었다”
- 대학생 당시 목격한 현장...5년동안 홀로 제작
-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 출품 호평

지난 2004년 수원인권영화제와 10월30일 서울 선재아트센터에서 열린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이 됐다. 또 이 영화는 12월21일 서울 구로구민회관에서도 상영됐고 지난 2005년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와 인권영화제에 출품 공모를 통해서 심사위원들로부터 선정되어 상영됐다.

2005년 제1회 안양변방영화축제(5월 22일)의 경우 서울, 부산, 대전, 원주, 광주 등 대도시 시민사회단체들의 '특별전'에 초청되어 많은 각광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오는 28일부터 6월6일까지 열리는 인디포럼영화제 개막일인 28일과 6월2일에도 또다시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87년 6월 민중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 등의 내용을 담는 군사독재정권의 6.29가 선언됐고 이후 12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당시 투표를 앞둔 구로구청에서는 부정투표함 밀반출에 대한 항의농성이 벌어진다. 나루 감독은 대학생(87학번, 대학 1학년) 신분으로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하다 그곳 현장에 합류해 현장을 생생히 목격한 사람이다.

“16일 오전 11시경 ‘부정투표함’이 구로구청 현관 앞에서 반출되고 있다’고 어느 아주머니의 제보가 온 것이지요. 당시 여의도 평민당사로는 여러 차례 전화 제보가 왔다고 합니다. 당시 평민당원이던 박영환 씨 외 수명이 구로구청으로 달려가 이미 두 대가 도주한 상태에서 서울 7다 7870 봉고트럭을 발견해 시민과 공정선거감시단원 등 40~50여명이 합세, 부정투표함 반출을 저지하면서 사건이 시작됐습니다. 구청 앞에서 줄을 지어 투표 차례를 기다리던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시위에 합세하게 됐지요.”

당시 구로구청 3층 사무실에서 투표위조 여부를 조사했던 시민, 학생들에 의해 투표함 1개, 투표용지 1506개, 붓두껍 60개, 인주 70개, 손장갑 6켤레가 발견된다. 이 사실을 안 시민, 학생 등 항의 시위대는 계속 늘었고 여론 확산을 막기 위해 군사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해 진압을 하면서 인권유린이 생겼다.

“군사독재 정권이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에 대해 최루탄, 지랄탄, 백골단 등을 앞세워 폭력적이고 무자비하게 진압했어요. 인권을 무차별적으로 유린했지요. 그런데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문, 방송 등 미디어에서는 사실 그 자체를 조명하지 않고 있고 ‘돌 속에 묻힌 말’들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영상을 통해 인권탄압에 대한 실상을 제대로 알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루 감독이 17년 전에 쓴 일기장에도 이 사건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일기장에서 “후에 이 사건을 영상으로 반드시 남기겠다”고 기록해 놓기도 했다.

그는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 사건이 있는 직후부터 94년까지 구로 지역에 대한 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2호선 구로구청역(현재 대림역)에 내리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그 사건이 뇌리에 스쳐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남았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경찰만 보면 무척 놀랐고 창문이 없는 공간을 못 들어갔어요. 낮선 공간에 오면 비상구부터 찾게 됐어요. 구로라는 지역 자체에 대한 후유증인 셈이지요.” 바로 영화를 만드는 개인적 동기인 셈이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 직접적(객관적) 동기는 앞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공권력의 인권유린에 대한 내용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군부독재 정권이 경찰과 백골단이 시위대를 에워싸고 집단적 폭력과 난사를 했어요. 울분이 치밀었어요. 그런다고 이 어마어마한 사건을 당시 방송이나 신문이 보도는 했지만 제대로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요. 지금도 상세히 잘 알려지지 않는 사건이지요. 다큐멘터리를 통해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17년전 일기장에 기록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는 99년 12월부터 2004년 9월까지 5년간에 걸쳐 영화 촬영을 했다. 이 기간동안 백방의 노력으로 자료를 수집했고 6mm 캠코더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관련자 인터뷰를 했다.

“당시 뿔뿔이 흩어져 있는 관련자를 만나기 위해 전국을 돌아 다녔습니다. 기차와 고속버스, 마을버스를 번갈아 타며 오지까지도 찾아가 사람들을 만났지요.”

영화 촬영을 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당시 보도됐던 뉴스를 방송국에서 개별적으로 돈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방송국에서 촬영해놓고 방송을 하지 않았던 부분을 구하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당시 서울대생인 이상빈씨가 그 현장을 촬영했는데 막상 그를 만나보니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노력 끝에 80년부터 독립영화를 제작해온 ‘서울영상집단’에서 그 테이프를 구하게 됐지요.”

87년 12월 한 달 동안 방송국에서 보도한 테이프만 40개를 샀다. 영화 촬영테이프만 170개가 넘는다.

“작업과정에서 20살 때 일기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무서운 현장의 생생한 기억들이 일기장에 잘 표현돼 있습니다. 글 보다 영상으로 표현해야 사람들이 구체적이고 더 직접적으로 와 닿기 때문에 영화를 촬영하게 됐지요. 일기장도 많은 참고가 됐어요.”

그는 영화촬영을 하면서 제작비가 없어 프리랜서 방송작가(2002년까지) 활동을 하면서 신문, 잡지, 인터넷에 글을 기고해 원고료로 제작비를 마련해야 했다. 심지어 반전단체는 물론 결혼식 등을 찾아다니며 비디오 촬영을 해주기도 했다.

“돈이 생기면 카메라를 사고 또 생기면 렌즈와 편집기를 사고, 다음 프라이포드와 오디오를 사고 이런 식으로 5년 동안 장비를 구입해가면서 촬영을 하다보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돌 속에 갇힌 말들’의 제작 일지를 인터넷 커뮤니티(www.freechal.com/87goolo)를 개설해 구체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그의 데뷔작이기도 한 다큐멘터리 영화 <돌 속에 갇힌 말>은 구성과 편집은 혼자서 소화해 냈지만 촬영은 도와주신 분들이 여럿 계신다고 했다. 또 영화 엔딩 타이틀에 자막으로 올라온다고 덧붙였다.

영화자막 작업을 통해 외국 영화제에도 출품을 할 계획을 밝힌 그는 앞으로 여성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를 구상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사당동에서 자취를 하면서 대학생활을 했다. 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구로지역과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대학시절 공정선거감시단에 자원해 활동을 하다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밀반출사건에 연루된다. 한겨레문화센터 VJ과정을 마쳤고, 영상편집도 아카데미에서 돈을 주고 배웠다. <오마이뉴스> 창간되기 이전인 2000년 2월 17일 <오마이뉴스> 창간 시험판에 ‘캠코더 아줌마의 커밍아웃’이란 제목으로 실명으로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영화와 관련된 구로 지역신문이기에 좀더 신경을 쓰고 인터뷰에 응할 용기가 생겼다”며 “이 영화를 위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줬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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