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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이야기 196] 인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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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이야기 196] 인생버스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9.09.20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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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는 거의 토요일마다 긴 나들이를 한다.

아이들이 이제는 물놀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소리를 할 만큼 여름 내내 물놀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물놀이를 갈 때마다 돗자리며, 물놀이 용품이며 몇 푼을 아껴보겠다고 심지어 물까지 싸 짊어지고 다녔다. 짐 무게며 부피가 상당한 탓에 아예 여행 가방 하나에 한 가득 짐을 싸서 끌고 다녔다.

멀건 가깝건 늘 버스나 전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올망졸망한 나이대도 제각각인 아이들 열 서넛이 우루루 버스에 올라타면, 우선 카드를 찍는 순간부터 시선을 끈다.

툭하면 잔액이 없는 아이가 나오고, 금방 돌아서면 주머니에 분명히 넣어둔 교통카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참을 뭉그적거려야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쯤은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파김치가 된 아이 서넛은 잠에 곯아떨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조금은 더 여유롭다.

아직 팔팔한 아이들을 막 이끌고 목적지를 향해 버스나 전철을 탈 때에 비하면 양반인 셈이다.

여기저기 쉴 새 없이 떠들어대고 어딜 매달리거나 말도 안되는 곳에서 툭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보려는 아이들을 말리며 진땀을 흘려야 한다.

조금만 멀리 가면 다리가 아프다고 성화가 나기 때문에 아이들을 요령껏 앉히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꼭 다리가 아프다고 성화를 부리는 아이가 목적지가 같은 다른 친구 앞에 내내 서서 투정만 부리면서도 꼼짝없이 자리를 옮기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어쩌랴 싶어 한숨만 난다.

그러면서 저 멀리서 와글와글 작은 소리 폭풍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뻗히는 게 힘이고, 통 남 눈치 볼 것 없이 살아서 그런지 쥐죽은 듯 소리를 내는 게 너무도 힘이 드는 모양이다.

주의를 준다고 주지만 아주 가끔은 유독 심하게 난리를 치는 그런 날이나 그런 아이가 없지는 않다.

또 그런 날이면 가끔 혼 줄을 내는 어른을 만나기도 한다. 대부분은 귀여워해주시고, 버스 안에서 자리를 양보해주시거나 심지어 먹을 것 등을 나누어주며 예뻐해 주시는 경우가 많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잠시 버스 안이라는 걸 잊은 듯이 찧고 까불던 아이들이 때로는 어른의 호통 한 마디에 꼼짝없이 기세가 눌려 잠잠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호통도 가만 보면 조금은 서로 다르다.

이 순간을 지나치지 말고 나라도 나서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을 일러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내신 분과 정말 그냥 짜증이 나서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는 경우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앞의 경우에는 아이들을 돌보는 힘을 덜어주시고,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예의바른 태도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일러주시는 것이니 교사의 가르침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 된다.

하지만 뒤의 경우는 민망하고, 부끄럽고, 아이가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때로는 염려가 된다. 조금만 더 좋은 말로 일러주시면 좋을 텐데 아쉬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일에 그렇게 마음을 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은 분명하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난리를 부리는 아이들을 가끔 만나는 경험은 사실 나 역시 없지 않다.

그럴 때 그냥 눈살만 찌푸리지 않고 보호자의 양육을 덜어주기 위해 적극적인 훈수를 두기 위해 그래도 작은 용기를 내야 한다.

흔들리는 위태로운 버스 안에서 자리가 났음에도 앉지 않으려고 뻗대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단호한 어른의 한 마디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나마 그런 눈치를 보며 아이가 자리에 앉았을 때는 그렇게 바뀐 태도에 몇 번이나 고맙다, 기특하다, 장하다를 연발하며 혹시나 입었을지 모를 마음의 상처도 함께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성가신 일일 수 있지만 그렇게 모두가 함께 안전하게 가는 것이 결국 나에게 좋은 일이다. 그렇게 인생 버스가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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