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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이야기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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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이야기 196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9.06.03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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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

지난 토요일 아이들과 함께 청량리에서 방정환 선생을 기리는 작은 노래잔치에 다녀온 시각은 거의 오후 5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방정환 선생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열두 명의 어린이를 데리고 마침내 구로역에 당도했을 때 나는 비로소 약간 안도를 했다. 하지만 역에 도착하자마자 교통카드를 맡겨놓았던 두 아이의 카드를 찾아주고, 전철비를 내주었던 두 아이의 전철카드 보증금을 환불 해야 했으며, 돈을 맡겨놓았던 한 아이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돌려달라고 해서 그 이유를 물어보느라 개찰구 앞에서 잠시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일에 앞서 불쾌함이 역력하였는데 그 이유는 함께 갔던 고학년 아이 여럿이 개찰구 앞에서 벌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전철역에서 계단을 올라왔는데 구로역 계단을 오르자마자 마치 하늘로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아이들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인사도 안 하고 저희들 멋대로 가버렸구나' 씁쓸한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아온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아직도 남아있는 올망졸망한 어린 아이들이 무사히 집근처로 가기까지 아직도 끝난 게 아니므로 그런 불쾌함은 잠시 억눌러둔다.

필요할 때는 찾다가 필요 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내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에도 불쾌한 기분이 들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작은 손해도 안 보려고 따박따박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딱 질색인지라 돈을 내달라는 석연찮은 아이 표정을 붙들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울상을 짓고 돈을 돌려달라던 아이 왈 인즉, 딱지치기를 하다 한 장을 잃어버렸는데 돈으로 그걸 배상해야 하니 돈이 필요하다며 울상을 짓는다. 돈을 받아야 하는 아이는 저만치에 가 얌전히 서있다. 그러면 안될지도 모르지만 결국 두 아이를 불러서 그렇게 돈이 오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을 꺼내자마자 몇 차례 그런 일로 실갱이를 한 적이 있던 아이는 무슨 말이 나올지 뻔히 알겠단 투로 안 받아도 괜찮다며 휑하니 앞서 가버린다.

앞서도 말했지만 내 손에는 보증금을 환불받아야 할 카드가 두 장이나 들려있던 터라 딱지를 잃고, 아이들 사이에서 신망도 함께 잃었을 아이에게 부랴부랴 앞서 가는 아이들을 좀 붙들어 세우라는 말을 하고 보증금을 환불하러 허겁지겁 달려갔다. 이제 곁에는 한 아이만 남았다.

곧 아이는 제 말을 들은 척도 안하고 아이들이 가버리더라며 돌아왔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마침 얼마 전부터 함께 온 1학년 꼬마 모습이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언제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제야 찾으니 아이들도 통 모르쇠다.

두 아이를 데리고 길 건너 버스정류장까지 갔더니 서너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화가 잔뜩 나서 인사도 안 하고 가버리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했더니 아직 어린 한 아이만 와서 잘못했다고 사과를 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게 급선무라 센터로 오라하고 아이를 찾는다.

하지만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흔적도 없다. 두 아이를 데리고 마냥 거리를 헤맬 수도 없고,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어 센터로 돌아왔다. 없어진 아이 집에 전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지 연락을 부탁하고 인사도 없이 가버린 아이들 집에도 연락을 했다.

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화를 냈던 지라 부모님과 아이들을 함께 불러 이런 태도는 고쳐주는게 맞겠다 싶어, 미안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센터로 오십사 말씀을 드렸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서 어쩌면 귀찮을 수 있는 일인데도 진심으로 아이들 태도를 염려하시며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주셨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생각 없이 교사야 의례 따라올 줄 알고 이제는 저희들이 아는 길이고 하니 그냥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 일로 함께 갔던 사람이 이리 상처를 입을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잃어버린 아이도 멀쩡히 돌아와 엄마와 센터를 들러주었다.

인사는 생존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제는 우리 그 다음으로 나가는 중요한 신호다. 너희들은 오늘 그것을 배우느라 그 난리를 친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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