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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 정치야 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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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 정치야 뭐하니?
  • 성태숙시민기자
  • 승인 2018.10.13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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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살러 들어온 건 둘째 아이가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이다. 그러던 아이가 이제는 성년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으니 적지 않은 세월을 이 집에서 산 셈이다. 그 때 함께 들어왔던 세탁기도 지난 해 수명이 다해서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듯 내보내고 이제 막 새로 온 세탁기를 겨우겨우 알아가고 있는 참이다. 


집을 장만할 때 추첨으로 동과 호수를 결정했던 터라 그 전에는 이층에서조차 살아본 일이 없던 내가 22층이라는 까마득히 높은 층을 집으로 배정받고 보니 첨에는 암담했다. '땅의 기운을 제대로 못 받을 테니 우리 식구는 이제 제대로 살기는 글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생각보다 좁아 보이는 집에 살짝 실망까지 더했더랬다.


그래도 살아보니 작은 장점들이 많은 집이었다. 높은 곳이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바람맞이는 실컷 할 수 있는 게 특히 큰 장점이었다. 겨울엔 추위로 고생을 좀 하기도 하지만, 날이 좀 따뜻해지고 나면 현관문과 창을 열어두고 살결에 부딪쳐오는 맞바람을 즐기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게다가 집이 좀 구석진 곳에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보니 한가롭게 문을 열고 살아도 큰 폐가 없는 것 역시 맘에 꼭 드는 장점이다.


하지만 그런 집도 낡기 시작한다. 나도 늙어가니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할 밖에다. 아래층 화장실에서 우리 집 화장실 때문에 물이 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조용조용한 의논조로 말씀을 하시더니 이런저런 사정으로 공사가 지연되자 나중에는 정말 다급하고 답답한 기색이 역력하셨다. 


부랴부랴 화장실을 고치게 되면서 어머니와 나는 살짝 언성이 높아졌다. 이런저런 의견 충돌, 공사를 맡기는 과정에 대한 다른 이해들로 일의 진두지휘를 맡으신 어머니는 속상하셨던 모양이다. 내 입장에서는 이왕 벌이는 일인데 싶지만 결국 두 사람이 각기 양보하여 그저 물이 새는 곳을 어떻게든 손 보고 마는 것으로 일의 마무리를 짓고 말았다. 그런 난리를 치고 있는데 소식 하나를 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10살 이하의 어린 나이로 자기집을 가지고 있는 아동들이 8,139명에 달한다는 소식이다. 물론 그중 350명은 강남구에 살고, 5채 이상의 다주택 소유 아동도 25명에 달한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런 핏줄과 태생에 따른 격차를 염려하며 세상이 '중세로 회귀하고 있다'고 평을 한다. 참 심각한 불평등이다. 


세상에 제 몸 하나를 뉘일 작은 집 한 칸은 인간을 제대로 살게 하는 기본이 된다. 그런 집을 가꾸는 일은 물론 쉽지 않지만 말이다. 정치가 이런 기본을 잘 살피는데 좀 더 애를 써야 하지 않을까? 중세로 돌아가긴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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