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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한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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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한국정치
  • 구로타임즈
  • 승인 2003.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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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명문팀인 시카고 컵스나 보스턴 레드삭스가 수십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을 두고 “밤비노의 저주” “염소의 저주” 등과 같은 속설들이 회자된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밤비노란 애칭을 가졌던 역대 최고의 선수인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이적시킨 이후, 시카고 컵스는 염소를 데리고 온 노인에게 경기장 입장을 막은 후 한번도 우승을 못했다.

한국정치도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거의 모든 전 현직 대통령들이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에 시달려왔다. 국민들의 탄식과 분노의 목소리도 높다. 정치인들의 고백과 사죄, 그리고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비등하다. 정치개혁을 위한 제안들도 무성하다. 정치자금법 개정, 선거구변경, 선거공영제 등이 제시되고 있다. 범국민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한국정치의 저주가 풀릴 수 없다. 한국정치는 여전히 불법적인고 부정하게 이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치개혁의 실험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2000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운동으로 59명의 부패정치인들이 퇴출되었다. 그러나 국회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역사상 가장 깨끗하게 치렀다는 작년 대선에도 역시 서민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뿌려졌다.

정치자금 퇴치를 위한 제안도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최근 한결같이 제시되는 해결책 중 하나가 정치자금의 투명화이다. 음성적인 돈거래를 차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자금을 투명화한다 해도 워낙 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소용이 없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많은 돈을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정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들어간 비용에다 이윤까지 얹어서 어떤 형식으로든 회수하려 들 것이다. 현재 불법인 것을 합법으로 바꾸어서라도 자신들이 쏟아부은 정치적 투자에 대해 회수하려 들 것이다.

또다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선거공영제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사실 선거공영제는 이미 실시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중앙선관위로부터 대선보조금으로 138억원, 선거비용보전금으로 143억원을 받았다. 정당보조금까지 합해 지난 10월 이후 대선 국면에서 310억원을 받았다. 민주당도 282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한겨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1997년 대선에서 우리국민들이 부담한 선거비용은 1인당 389원으로 미국대선 1996년에서 419원, 프랑스대선 1998년에서 284원으로 이미 선진국을 능가하는 수준의 선거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근본 문제는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해결해야한다. 즉 돈 적게 쓰고 정치할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어떤 정치 개혁조치도 실효를 거둘 수 없다. 그러면 왜 대통령선거 후보자가 수백억원을 써야하고, 국회의원 출마자가 십억원대를 써야하는가? 그 이유는 언론을 통한 저비용 정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정치에 내린 저주이다. 과거의 독재자들은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언론의 정치보도 기능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려 들었다. 이를 위해 수백여개에 달했던 지역언론들을 폐간시키고, 10여개에 불과한 중앙언론이 전국을 관장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꾸준한 민주화 투쟁 덕분에 한국사회는 1980년대 후반들어 대통령 직선제, 언론자유보장, 지방자치실현 등의 민주화 목표를 달성해 나아갔다. 정치권력도 1인 독재체제에서 다양한 국민의 대표자들로 분산되었다. 언론의 역할도 달라져야 했다. 권력의 핵심부가 분산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감시하고 비판할 대상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중된 언론권력을 분산시키는 작업은 간과했다. 권력의 통제로부터 언론을 해방시키는데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중앙집중화된 언론을 지역적으로 분산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다.

현재 유권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언론의 정치보도기능은 후보자의 TV토론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도 전국적으로 동일한 후보를 선택하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효과를 보이지만, 전국 각지에서 각기 다른 후보를 뽑는 지방자치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기력해진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유권자들은 출신지역이 같거나, 연고가 있거나, 악수라도 해봤거나, 아니면 생김새나 말투가 마음에 드는 후보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한편 후보자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정책을 부각시킬 수가 없어 돈과 조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했고, 이를 조달하기 위해 정치인들은 기업과 뒷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치부패라는 지긋지긋한 저주에서 한국사회가 벗어나는 길은 단 한가지이다.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사라진 건강한 지역언론을 재건하는 것이다. 기형적이고 비효율적인 전국언론 중심의 구조를 고쳐, 중앙언론과 지역언론이 균형을 이루도록 체질개선을 해야한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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