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틈을 내어 잠시 도서관을 들렀다. 필요한 책도 있지만 요즘은 한가하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 대로 눈길 가는대로 소소히 읽을 소설책이나 골라오고 싶어서다. 그래서 정말 후딱 집어 들고 나왔다.
그런데 대충 제목만 보고 골라온 책들 중 한 권을 보고 그야말로 길에서 춤이라도 출 뻔했다. 한 권의 저자가 우치다 다쓰루였던 것이다. 그의 새 책이 나온 줄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새 책을 보게 되니 너무 반가웠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만큼 그를 잘 알거나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지만 그를 실제로 본 일은 없다. 더욱이 혹시 이름을 잘못 말했을까봐 책 표지를 보고 다시 확인을 해야 할 정도니 뭐 그저 그렇고 그런 독자와 저자의 관계일 뿐이다. 게다가 나는 보통 그를 '우츠다 다츠루'라고 내 멋대로 부르고 있으니 똘똘한 독자도 아니다.
내가 우치다 다쓰루를 좋아하는 까닭은 물론 그의 독특한 글 솜씨 때문이다.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그 피식하고 웃음이 나게 만드는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 때문인데, 이제 보니 그게 약간 요즘 말하는 '아재'스럽기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책은 보통 "뭐야? 진짜?"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시작이 많다. 이번에 읽기 시작한 책도 그렇다. 인간은 원래 첨부터 다른 사람 말은 딱 안 들어먹게 생겼다는 것이 책의 시작이다.
그 이유는 세상이 워낙 소음과 쓸모없는 정보로 가득 차서 그걸 다 듣고 있다간 생명체가 에너지를 소진해버려 살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능은 너무 순식간에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쩌다 깜박해서 부모님 말을 첨부터 끝까지 다 들어버렸어."라든지 "잠시 정신을 놓치는 바람에 수업을 그만 듣고 말았어." 이런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작가는 '이제부터 당신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주의 깊게 읽게 될 것이다'란 도발적 주제를 달고 이야기를 시작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절대 안 들어먹게 생겼다면서 자기는 무슨 재주로 우리가 넋 놓고 자기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큰소리를 치는가 말이다. 아! 이런 얄미움이 우츠다의 장점인데 참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결코 지고 싶지 않다.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해보시지!"하고 아주 도전적인 자세가 된다. 팔짱도 끼고 "흥, 도대체 뭐라 썼는지 절대 한 자도 넘어가지 않을 테니 어디 한 번 해 보시라구." 이렇게 마음을 먹고...어쩌겠는가? 아주 판 벌려 책을 읽는다.
"난 절대 당신 이야기에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그럴 위인이 아니라고."큰소리를 치지만, 결국 아주 한 자, 한 자 째려보듯, 책장을 씹어 먹을 호전적 기세로 책을 읽는다. 결국 그의 말대로 너무도 주의 깊게 책을 읽게 될뿐더러, 도대체 어디쯤에서 그의 말이 틀릴까를 살펴가며 읽는 통에 나도 모르게 참여형 독서 혹은 비판적 글 읽기가 되어 버린다.
아! 이런 밀당의 고수! 다시는 안 넘어가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또 그 덫에 걸려서 그만 넙죽넙죽 하자는 대로 다하고만 내 꼴을 깨닫고 나니 뒤늦게 아뿔싸 싶을 뿐이다.
우츠다는 원래 프랑스의 현대 사상을 공부한 철학가이기도 하지만 그 철학을 합기도 수련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예 자기가 사는 동네에 철학과 합기도 수련을 함께 하는 도장을 열어서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을 읽는 것은 마치 합기도 대련 한 판을 멋지게 벌인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나는 호기롭게 나섰지만 보기 좋게 나가 떨어졌다.
2018년. 다가오는 해에는 우츠다의 얄미운 밀당이 좀 많아지면 좋겠다. "아! 가만 계세요. 저희가 다 알아서 해드릴게요." 이런 식이 아니라, 서로 맞잡고 한 판을 벌여보는 방식 말이다. 능숙하게 넘겨버리면 호기롭게 웃어버리고 다음 도전을 준비할 수 있게, 그렇게 우리 모두가 서로를 마주보며 진정한 상대로 서로를 대하는 그런 한 해가 되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