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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73]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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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73]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7.04.14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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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야 겨우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 그사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직장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낌새가 수상해서 물어보았던 터인데 그때는 딱 잡아떼었더랬다. 그런데 어제 하루 일을 나가고 이제는 말을 해도 되겠다 싶었는지 슬슬 말을 붙여온다.


실은 음식점 점원들로 여성 직원들만 뽑고 있었던 곳인데 남자인 자기가 뽑혔다고 은근 자랑을 하고 싶었던 눈치다. 여성들 못지않은 미모라도 가졌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는 것인가 하고 약간 의아스러웠지만 그냥 넘기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불안정하긴 하지만 이런 일자리라도 잡은 것이 어디냐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계속 이런 식이라면 어쩌나 싶은 걱정도 없지 않았는데, 그런 부모 마음은 아랑곳없고 제 외모 자랑만 앞서니 남몰래 한숨이 났다,


그러던 차에 구로에 엄기호 선생이 와서 부모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번쩍 눈이 떠진다. 엄기호 선생의 글을 예전부터 좋아하기도 했었고, 특히 최근에 하지현 선생과 함께 쓴 '공부 중독'이란 책을 재미있게 본 기억도 있어 꼭 만나고 싶었던 터였는데 때마다 사정이 있어 뵙질 못하고 있던 차다.


그런데 부모교육에 은근 명강사를 잘 모시는 건강복지센터와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힘을 합쳐 엄기호 선생을 모신 것을 보고 어찌나 기쁘던지 단숨에 신청을 했다. 거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찬 것을 보고 강사를 모신 두 기관들의 안목도 놀라웠고, 강사를 알아보는 지역 부모님들의 안목에도 또 한편 놀랐다.


사실 엄기호 선생은 사회학자이다. 따라서 그의 장점은 사회현상이 지닌 의미를 파악하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사회적 의미를 파악하여 잘 전달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선생이 파악한 공부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담론 중 하나였으므로 그 이전에도 공부가 우리 사회에 가진 의미를 파악한 이야기들이 없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 선생이 공부를 두고 한 이야기에서는 공부가 자아실현과 어떤 의미를 맺고 있는가를 밝힌 것에 그 새로움이 있다.


즉 90년대를 기점으로 무조건 공부만을 강조하는 강압적 태도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라고 한 이야기가 그 본래의 의미를 잃고 성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개인의 무한 노력을 요구하는 지상 과제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그런 성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생존을 위해 무기력 속으로 도망치는지 그 과정을 낱낱이 밝혀준 것이 새로운 점이었다.


옆에서 같이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은 한 점이 아쉽다며 계속 투덜거린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함께 이야기를 들었건만 그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세상살이를 뉘라서 감히 어떻게 하면 된다 하고 명쾌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겠는가?


엄기호 선생이 한 이야기도 사실 어쩌면 그렇게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있다. 무엇보다 인상에 남는 이야기는 지금 하는 것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면 자기의 진로를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고, 대학에서 사회진출을 위해 준비해서 25살 남짓이면 자기를 실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너무 무리라는 것이다.


일종에 감각 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럴듯한 사례로 미디어 등에 소개되는 것은 어쩌면 특별한 아이들의 이야기일 뿐인데, 때로는 그것들이 엉뚱하게 기준점처럼 생각되어 우리 아이들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아이를 성급하게 내모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진로와 자기 성취를 압박으로 느끼게 되어 아무 길이나 자기 것으로 삼아 되지도 않는 노력을 기울이다 결국 열패감에 휩싸일 뿐이라는 것이다.
교육을 받는 중 간간이 들려오는 웃음 속에도 한숨이 묻어난다. 함께 불안과 초조함을 견뎌가며 이런 시대에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것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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