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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67]구로의 등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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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67]구로의 등대들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7.03.03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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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보는 일간지에 오랜만에 구로 이야기가 실렸었다. 이야기인즉 구로의 한 게임 개발 업체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는 것이 작은 이야기로 실려 있다. 그 회사의 근무 시간은 너무 지독해서 직원들이 자살을 할 정도로 장시간 근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 항상 회사의 불이 꺼질 일이 없는 그 회사를 두고 사람들은 '구로의 등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구로의 등대'를 자처하던 게임 회사가 마침내 탄력근무제 등을 도입하여 근무시간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정상화하기로 했다고 하여 주요 일간지 등에 그 기사가 실린 것이다. 참 아직도 구로동은 이런 일로 신문에 이름이 실리는구나 싶어 기분이 영 께름칙하다.


안 그래도 토요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구로공단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시간 저편, 엄마의 노래'를 파랑세 아이들과 볼 참이었다. 무엇을 보는 것인지 잠깐 설명을 하려고 구로공단을 언급했는데, 구로공단을 입에 올리자마자 여기저기서 "구로공단이 뭐에요?"하는 소리들이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와 깜짝 놀랐다. 살아생전에 구로공단을 모르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터여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구로공단은 잘 몰라도 아마 이 게임 회사의 이름이나 이 회사가 개발한 게임을 모르는 아이들은 많지 않을 것 같으니 상전벽해다. 그런데 아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구로의 등대라고 불리는 이 회사처럼 구로공단도 장시간 노동이라면 아주 이골이 난 곳이다. 공장도 다니지 못하셨던 아버지는 국수기계와 혼연일체가 되다시피 일하시는 것을 늘 보고 살아서인지 나 역시 어쩌면 적절한 일과 여가의 균형 감각은 영 부족한 편이다.

일 안하면 뭘 하겠느냐는 식으로 늘 살아버릇했는데, 사실 다른 것을 할 여유나 재주가 부족한 탓인 줄 모르고 일만 하고 살면 그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 현실을 풍자한 민중가요라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간혹 '아 이건 나나 우리 동네가 사는 것을 두고 한 이야기다'는 생각이 드는 노래들이 간혹 있었던 것이다. 특히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 온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박노해 시인의 시, '시다의 꿈'에서는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밝히는'이란 노랫말이 나온다.


이 구절은 당시 어린 노동자들이 물품납부일자를 맞추기 위하여 타이밍이란 약을 복용해가며 잠도 못자고 강제로 철야 근무를 강요당하던 상황을 생생히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시가 구로공단의 사정만을 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분명 당시 구로공단의 사정은 이와 전혀 동떨어진 정상적인 근무환경을 보장하던 곳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오히려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없었다는 보장이 없을 만큼 당시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구로공단의 노동 실태가 어떠했는지를 아프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 그런 노래를 들었을 때 그 때 그 감정을 무엇으로도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렇게 삶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 것인지 아무 것도 모르고 꾸역꾸역 살아온 삶을 누군가 다른 이는 알아차리고 아프게 여기는 것을 보면서 아무 것도 제대로 느낄 줄도 모르는 우리와 우리 동네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을 처음으로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구로공단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렇게 말도 안되는 시절은 그래도 지나간 것이 아닌가 하고 너무 손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두 알의 타이밍이 아니라 드링크제로 잠을 깨우며 미싱이 아닌 프로그래밍을 하는 세부적인 내용은 달라졌지만 가혹한 노동이라는 본질적 조건이 변하지 않았음이 절망스럽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아직도 일과 여가의 균형은 전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상전벽해인데 어찌 이리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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