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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63] 형편껏 사는것은 좋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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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63] 형편껏 사는것은 좋다만 ...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7.02.03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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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친구들과 갑작스레 여행을 다녀왔다. 원래는 숙박비 등을 지원해주는 곳에 신청서를 내고 가려 했는데 알고 보니 지난해 이미 신청을 받은 차여서 우리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6학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1박2일의 자유 캠프를 원한다고 대표자회의를 통해 알려온 터여서 이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겨우겨우 저렴한 숙소를 알아보고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해 30여명이 넘는 인원이 1박2일의 여행을 그래도 무사히 다녀오고 나니 큰일을 치르고 난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이들도 큰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저희들끼리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자유롭게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였고, 교사들도 겨울방학에 좋은 추억 한 자락을 안겨주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만을 안고 떠난 길이었다. 밤낮없이 일하느라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는 부모님들은 방학 때 어디 한 번 데려가주지도 못해서 너무 미안했는데 이렇게라도 가주니 너무 고맙다고 진심어린 인사를 해주셔서 그것도 마음의 보탬이 되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숙소 가까이까지 내려가서 일반 버스를 갈아타는 여정이었다. 버스를 빌릴 엄두는 낼 수가 없었다. 그만한 것을 감당할 수 있는 형편은 절대 못된다. 30명이 넘는 식구들이 되고부터는 무엇을 해도 한참을 망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영화를 한 번 보는 것도 몇 번이나 계산기를 두드려 보아야할 만큼 살림살이는 엄중해졌다.


돈이 없으면 남는 것이 시간이다. 이왕 온 여행인데 그 시간들을 그래도 너무 무의미하게는 보내게 하지 말자 싶어서 저녁밥을 먹은 아이들을 몰고 무조건 밖으로 나왔다. 늘 대낮처럼 환한 도시에서만 살다온 아이들인지라 컴컴한 밤중에 어딜 가자고 나서는 길이 모두들 마땅치 않은지 아우성들이다.


산자락 사이에 막아 요새처럼 성문을 낸 길을 돌아오기까지 제법 밤길을 걸었다. 폭설이 내리기 전날 밤 조명등 아래 밤길을 걸을 수 있었던 대운은 구로동 아이들이 예까지 놀러온 정성을 기특하게 여기신 산신령의 배려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귀찮고 한편으로는 나쁘지 않은지 아이들은 한참을 궁시렁거리면서도 뒤를 따른다. 무언가 대꾸를 해주면 돌아가자고 졸라댈 것도 같고, 초행길에 길잡이 노릇도 해야 할뿐더러 무엇보다 야밤의 운치에 취해서 아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 묵묵부답으로 앞서 걷기만 했더니 아이들은 급기야 나를 저승사자쯤으로 취급하는 놀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냐고 옆으로 물으러 온 아이들에게 아무 소리 않다가 놀래주는 표정을 몇 번 지어주었더니 저희들끼리 저 곁에는 가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또 야단이다. 그렇게 앞서갈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뒷자리를 묵묵히 봐주는 다른 동료 교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두어밤을 산천에 폭 파묻혀 세상모르게 살다오니 참 좋구나 싶었다. 함박눈이 내린 산길을 동료교사들과 함께 잠시 산책을 한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까르륵거리며 저희들 나름대로 오르락내리락하며 함께 지내는 걸 지켜보는 맛도 행복했다.


하지만 그 길이 다 좋고 편해서만 좋구나 좋다 소리를 왼 것만은 절대 아니다.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고 예매가 모두 되지 않아 아슬아슬했던 고속버스 시간을 맞추느라 기를 쓰고 다시 일반버스를 갈아타야 했던 여정만 생각해도 실은 아찔하다.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도 이런 좋은 면도 있구나 하고 침을 꿀떡 삼키고 마음을 돌려먹고 하는 거다.


누구처럼 제 자식한테 좋은 것은 죄 싹쓸이를 해주고 제 몸뚱이, 제 거죽에 좋다는 것 퍼붓는 데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이런 삶을 과연 알까 싶다. 마음을 돌려먹다가도 몇십 억씩 되는 돈은 그리 허무하게 쓰여지는 현실이 개탄스러워 침도 자꾸 목구멍에 걸린다.


형편껏 사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형편껏 살되 염치도 양심도 없는 사람들을 용서하며까지 살 수는 없다. 정말 누구처럼 "염병…"이란 소리가 절로 나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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