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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61]아버지표 '국수 도넛'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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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61]아버지표 '국수 도넛'의 추억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7.01.16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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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이 얼추 일을 끝내고 저녁을 차려 주실 때가 되면 벌써 8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오후 1~2시에 점심을 먹고 6~8시간 동안 정신없이 일을 하시며 간간이 식사 준비를 하시면 늘 그 시간대가 되곤 했던 것이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는 거의 매일 시장에 가서 장을 봐와야 하셨는데 장을 보러 가는 게 아예 6시쯤 되었으니 그때부터 식사를 준비해도 빨라야 그맘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저녁을 드시고도 가게 문을 곧바로 닫을 수 있는 게 아니니 밤 11시가 다 되도록 가게는 늘 환했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오후6시에 저녁을 먹는 게 실은 지금도 너무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저녁을 다 먹고 나면 7시가 되는 시간이니 그때부터 치우고 어쩌고 하려면 저녁 시간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지금 계시는 조리사 선생님께서 그 모든 걸 감내해주시니 그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할 따름이다.


실은 그렇게 저녁을 먹고 9시쯤 잠자리에 들어야 아이들은 푹 자고 학교에편히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밤 11시가 다 되도록 가게 일에 신경을 쓰시느라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을 그렇게 돌봐주시기가 어려웠다. 부모님이 안 계신 자리를 채운 건 미닫이문과 네 귀퉁이 다리가 달린 금성 텔레비전이었다. 밤늦도록 텔레비전을 보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부모님이 소리를 지르시면 후다닥 늘 방에 깔려 있던 이불 밑에 들어가 눈을 감곤 했었다.


늘 먹고살기 아등바등했던 시절이어서 두 분은 아마도 자식들을 살갑게 물고 빨고 할 마음의 여유도 별로 없으셨던 것 같다. 또 그 시절에는 식구들을 특히 사랑한다는 표현을 그리 하지 않고 살았던 때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2부제 수업을 할 정도로 넘쳐났고, 자식이야 늘 있는 대로 낳는 존재이니 지금처럼 아이들이 귀한 대접을 받고 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기억을 헤집어 보아도 무얼 특별히 어떻게 해주신 것은 몇 가지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 늦은 겨울 밤 아버지께서 특별히 굵은 국수를 기름에 튀겨서 설탕을 묻혀 마치 도넛처럼 간식을 만들어주시던 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린 마음에도 '아니, 이 양반이!'하고 감탄스러웠던 모양이다. 늘 살아내는 데 악착같이 하시느라 마음의 고삐를 풀 날이 없던 아버지가 엿보이시던 마음 한 자락을 본 것 같아서 그랬던 모양이다.


또 그보단 못하지만 겨울밤에는 한 번씩 큰 인심을 쓰며 아래 한길에 있는 센베이 과자 가게에 가서 과자를 사오라고도 하셨다. 가게 문을 열고나서면 겨울밤은 으슥해서 컴컴하고 찬 바람이 부는데도 과자를 사러가는 길에는 하나도 무섭지도 춥지도 않았다. 내가 싫어하는 생강맛은 빼고 내가 좋아하는 땅콩과 팥 앙금이 들어있는 눈사람 모양의 과자 등등 해서 고르는 맛이 일품인 센베이 과자를 사오는 일에는 늘 두 발을 벗고 나서곤 했다.


심부름 가기를 자처하는 마음에는 물론 그렇게 과자를 골라오는 일도 나쁘지 않았지만 모처럼 마음을 내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두 동생들을 따뜻한 안방 아랫목에 앉아서 기다리게 하는 맛도 나쁘지 않았던 탓도 있다.
나머지 식구들을 위해 모처럼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어린 마음에도 큰 기쁨이었던 것 같다. 늘 아웅다웅이고, 아득바득한 생활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맞이하는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은 기분에 더 들뜨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시절이 지나고 나면 치킨의 시대가 온다. 척하니 전화를 걸어서 누가 배달해주는 양념 치킨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왔을 때, '아, 우리도 이제 정말 두 다리를 뻗고 그래도 그렇게 마음 졸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되었구나!'하고 남몰래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치킨을 먹어댔는데....툭하면 반복되는 조류독감 이야기에 치킨과 달걀이 이제는 다시금 보인다. 이러다 혹시 아이들에게 "우린 예전엔 주말이면 양념치킨이란 걸 시켜먹고 하던 좋은 시절도 있었단다"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때가 오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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