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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移住) 시대에서 정착(定着)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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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移住) 시대에서 정착(定着)시대로
  • 장호순교수(순천향대)
  • 승인 2016.10.21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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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호순교수의 지역희망읽기 91
대한민국이 고속성장국가에서 저성장국가로 바뀌면서 한국인의 생활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현실도 어렵지만, 미래가 암울해지면서 삶의 기준과 목표가 달라지고 있다. 청년들은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하거나 미루고 있고, 장년층은 노후준비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삶의 필수조건으로 간주되던 결혼이 선택사항으로 바뀌었고,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는 부모들은 무모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인들이 세상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있다. 이주의 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 붕괴와 더불어 한국사회는 정착사회에서 이주사회로 바뀌었고, 그러한 이주의 역사는 근 100년간 지속되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많은 한국인들은 생존을 위해 혹은 일제의 강요로 인해 일본으로, 만주로, 연해주로,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곳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생을 마감하던 생존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정치이데올로기도 이주의 역사를 만들었다. 해방 후 분단과 전쟁이 일어나면서 북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공산정권의 압제를 피해 남으로 이주했고, 남에 살던 좌익세력들 중 상당수가 북으로 이주했다.
 
본격적인 이주는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했다. 농어업 위주에서 제조업위주로 국가경제가 재편되면서, 공장주변의 도시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심지어는 "무작정 상경"이라는 말이 생길정도였다.
 
수도권에 일자리가 집중되면서, 서울주변은 세계에서 최고로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 되었다. 조상대대로 살던 고향을 떠나 새로운 지역을 삶의 근거지로 삼은 낯선 사람들이 모여서 도시를 만들었다.
 
현재 한국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40-50대 인구의 대부분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자기가 태어난 곳이 아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혹은 홀홀 단신 낙후하고 가난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명절에는 자녀들을 데리고 고된 귀향길을 나서곤 했던 사람들이다. 은퇴시기가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귀소본능에 전원주택을 갖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고향에 남아있던 부모들이 사망하면서 고향은 타향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도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그들에게 전원생활은 그저 꿈으로만 남는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대 도시로 이주해온 지금의 50-60대는 지난 100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이주의 역사를 마침표를 찍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더 이상 이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즉 청년들에게는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더 좋은 곳, 살기 좋은 곳이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예를 들면,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청년층(20-34세)의 절반 가량이 지방출신이다. 이들은 대부분 고시원이나 원룸 등에 거주하는 주거빈곤층이고, 이들이 결혼해서 서울에서 정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지만,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는 더욱 어렵다. 그들에겐 천문학적인 아파트 전세나 구입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도권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은 주거빈곤층 신세는 면하지만, 더 좋은 곳으로 이주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을 떠나지 못하고 살다가 생을 마감해야 한다.
 
이주의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 즉 삶의 조건이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 살 것을 기대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은 비로소 한국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로 회귀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본래 인간에게는 태어나고 성장한 지역이 가장 살기좋은 지역이기 마련이다. 지리적으로 친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고, 생존에 필요한 정보습득도 쉽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가서 살수록 아는 사람도 적고, 정보도 부족하고, 자연 생존 경쟁력도 떨어지고 삶의 만족도도 낮아진다.
 
그래서 이민자의 나라이고 영토가 광활한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조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에 정착한다. 미국 뉴욕타임즈의 지난해 12월 기사에 의하면 부모가 사는 곳으로부터 자동차로 2시간 이상 걸리는 곳에 사는 미국인은 20%에 불과했고, 부모의 집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의 평균거리는 30킬로미터였다.
 
대한민국이 이주의 시대에서 정착의 시대로 회귀했음에도 아직도 대다수 한국인들은 그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방의 50-60대 부모세대들은 자녀들을 수도권으로 보내려 기를 쓴다. 20-30대 청년들은 현재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바로 자신들의 미래라는 점을 외면한다. 어딘가에 더 좋은 곳이 있을 것이라는 허망한 꿈을 꾸고 있다. 이제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꿈을 꿀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돌아보고 살기좋게 만들어야 한다. 저성장의 시대, 정착의 시대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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