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9 09:21 (금)
[구로동이야기 142]구로에는 '구로타임즈'가 살아있다
상태바
[구로동이야기 142]구로에는 '구로타임즈'가 살아있다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6.07.26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16주년 기념 특집을 맞아
지역사회는 다양한 인간관계와 이해관계가 서로 중첩되는 복잡한 곳이다. 행정의 최말단부가 삶의 직접적인 터전인 지역을 돌보며 지역민들은 그 안에서 지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무수히 교차하는 지점 그것이 바로 지역사회다.

그런 이야기들은 서로 엮이면서 또 다른 무엇을 만들어내는데 특히 그런 의미를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지역신문이 할 일이다. 누구나 답답한 일이 있을 때 "그럼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물어볼까?"라든지 아니면 "아이고, 동네 사람들이요, 이 내 말 좀 들어보소..."하고 나서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정말 동네 사람들이 내 말을 듣게 하고, 가까운 사람들의 의견을 묻기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역신문의 역할과 기능이다. 그러니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한다면 '수신'과 '제가'는 지역신문이 맡고 있는 셈이고, '치국'과 '평천하'는 중앙신문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공론의 장' 확보한 구로
물론 지역신문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는 돌고 도는 것이니 떠도는 소문의 한 조각을 못 얻어들을 법은 없다. 다만 그것은 소문인지라 주로 이야기의 몇 조각일 뿐이거나 혹은 심하게 삐뚤어졌거나 도무지 맥락을 잡기 쉽지 않은 흠결을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 지역신문에 오르는 것은 공론이 될 만한 가치가 있어, 언론으로 다루어지는 것이므로 그래도 객관적 보도의 기초 하에 말하자면 가다듬어진 이야기가 우리 앞에 제공되어 나온다는 것에서 크게 다르다.

그러니까 구로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과는 다르게 언제든지 필요한 이야기를 지역의 공론의 장에 손쉽게 띄우고 이로써 지역민들의 합의된 관점과 해결방식을 추구해볼 수 있는 기초적인 장(場)이나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 있는 지역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기초적인'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은 그런 기능이 아주 흡족할 정도는 아니란 뜻으로 신문의 부수나 발행주기 등등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구로타임즈의 형편을 생각하면 '가히 살아내는 게 장하다'란 말밖에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구로는 복이 많거나 아님 그 자세가 참으로'뭐든지 난 모르겠다는 쿨(cool)'한 구석이 있다.

물론 다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네가 좋아서 네가 감당하고 사는 일이니 네 알아서 해라, 우리가 무얼 어쩌란 말이냐?'하고 일관되게 내버려두는 면이 있다는 뜻이다. 그럼 또 일을 하는 상대방들은 오기인지 뭣인지 모르겠지만 그걸 또 꾸역꾸역 해가고 만다.
 
 '우리의 기억' 간직하는 소중한 언론
물론 그러다가도 정 감당이 안되면 한 번씩 미친 듯이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두를 위한 '공유지'를 꾸리는 일에 다시금 고개를 박고 눈물 한 방울 떨구고 만다. 아마도 그런 쿨함은 좋은 게 있으면 얼마나 좋고, 나쁜 게 있어도 지금 이 형편보다 얼마나 더 나쁘겠느냐 뭐 그런 마음에서 그러는 것인지 뭣인지 모르겠다.

이런 소리를 하면 '그렇게 잘 알면 네가 좀 도와줘라'하고 화살이 도로 날아올 지도 모르겠다. 물론 스스로 도움이 못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에서 하는 소리다. 그래도 나보다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이 좀 더 도와주시면 어떨까 해서 말이다.

그래도 다른 게 아니고 우리 동네살이가 차곡차곡 모이는 것이니 말이다. 언젠가 우리들이 추억을 더듬거나 무언가 중요한 일의 맥락을 되새길 때 또 이건 반드시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알려야겠다 싶거나 절대 잊지 말자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구로타임즈'이니, 그런 '우리 모두의 눈', '우리 모두의 입'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는데 우리 모두가 좀 더 힘을 보태야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무엇이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버티는 것이 장사라지만 세상이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데 너무 능수능란 한 세상이라 그저 버티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아슬아슬할 수 있다. 있을 때 잘 하란 말처럼 우리가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데 좀 더 마음을 쓰고 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