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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30] 추석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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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30] 추석이 온다
  • 성태숙 시민기자( (구로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장) )
  • 승인 2023.09.25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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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면 벌써 한가위를 맞는다. 

이번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걸쳐 계획되어 있는 캠프 활동만 잘 마치고 나면 한가위에는 푹 쉴 수 있다.

아이들도 6일에 걸친 장기 연휴를 벌써 고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몇몇은 틀림없이 연휴 중 월요일 전화를 해서 센터는 오늘 쉬는 거냐고, 심심한데 나가면 안 되느냐고 물어올 게 뻔하다.

나는 아마 그때쯤이면 방바닥과 물아일체가 되어 비몽사몽 간에 전화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어떻게 감정과 생각을 추스르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기도 매우 조심스럽다.

산지사방에 악다구니와 하소연과 비아냥과 몰염치한 말들이 넘쳐나서 말들의 홍수 속에 질식해 버릴 것만 같다.

그래도 그런 말들을 모르는 척 못 하고 듣고 탄식을 하고, 또 듣고 탄식하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때로는 더 질린다.
 
그런 중 맞이하는 한가위이다.

하루종일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심심하고, 누가 때렸고, 누가 안 놀아주고, 공부가 하기 싫고, 집에 일찍 가고 싶고, 저녁은 먹기 싫고, 가방에 들어 있는 사탕은 먹고 싶다며 매달리고, 칭얼거리고, 성내고, 삐쳐 있는 아이들을 보살피다 맞이하는 추석이다.

그렇게 실컷 시달린 날에는 저도 모르게 '누가 사람이 그리워 못 산다고 그래?'하는 소리가 저 깊은 속에서 울컥 치솟는다. 

그래서 소원인데, 추석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데도 안 가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저 잠 오면 오는 대로 눈 떠지면 떠지는 대로 한 며칠 그렇게 가만히 누워만 있고 싶다.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다 다시 살아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며 추석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요즘은 추석 상에 올릴 사과 앞에서도 그저 공손해지기만 한다는 물가를 생각하면, 한가위고 뭐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방바닥과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겠다 싶기도 하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절이다.

마음이 척척 맞아도 한참 힘들 수 있는 시절이다.

지난날의 과오들이 이상기후가 되어, 원망이 되어, 보복이 되어 몰려들고, 모래성처럼 쌓아 올렸던 작은 희망도 산산이 부서져 마음 둘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월이다. 

그런 모든 것들을 낱낱이 한 번 더 새겨보란 듯 추석 보름달은 휘영청 떠오를 것이다. 

그 달빛 아래 아이들은 기대에 찬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날들과 희망을 꿈꾸며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우리를 흔들어 깨울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길이 꼬물거리며 우리를 위로하듯 안아줄 수도 있다. 

그 작은 위로에 당신의 가슴이 다시 따듯해지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아직 끝을 본 것이 아니다.

지금은 지쳐 죽은 듯 누워 있지만 그 작은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예전과 같이 마냥 풍요로운 한가위는 아니지만 소망과 감사가 더 필요한 오늘의 한가위를 위하여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저 작은 손을 붙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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