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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41]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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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41] 생각도! 못했다!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6.07.03 0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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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칼럼에 생리대 이야기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상황이 미처 이 지경인줄 몰랐다는 반성이 놀람과 함께 밀려오기도 하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여학생들이 생리기간 중 생리대를 구하지 못해서 수건을 깔고 학교를 가지 못하고 누워있다는 소식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아무에게도 생리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아이가 신발 깔창을 빼서 생리대 대신 썼다는 이야기는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고 있을까?

이제는 그것도 다 옛말이 되었지만 나 역시도 생리대를 특별한 곳에서 구해다 쓴 적이 있다.

지금은 모두 멀쑥하게 바뀌었지만 그 슈퍼는 시장 안쪽의 약간 외진 골목에 한쪽에 있었다. 그 슈퍼에는 특별한 생리대가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홍보용 물품으로 나온 것들을 모아서 판매용으로 만든 것으로 보였다. 그냥 보통의 비닐봉지 안에 그런 생리대들을 모아서 훨씬 저렴한 값으로 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처음 그걸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텔레비전에서는 무슨 무슨 성분을 포함하고 순면으로 만들었네, 첨단 기법을 사용 했네 말이 많지만 첨단으로 가격을 내려주지 않는 한 나한테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말처럼 들렸다. 먹을 것 하나도 마음대로 텀벙텀벙 대놓고 쓸 수 없는 형편에 내 몸에 그것도 한 번 쓰고 말 물건에 호사를 부릴 수 있는 형편은 전혀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물건을 쓰는 사람은 나 같은 아줌마나 그런 줄 알았다. 때로는 얼마나 오래 시장 바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는지 뿌연 봉투가 '도대체 얼마나 날 기다린 거니?' 란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다른 물건들과 달리 박스에 담아서 길 한쪽에 무심한 듯 팽개쳐있는 그 생리대를 집어 들면서 나는 여자라서 행복한 게 아니고 여자라서 돈 들어가는 사실에만 마음이 쓰였더랬다.

그래도 그런 물건이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싶었다. 그나마 그런 물건을 취급해주는 그런 가게가 있으니 나 같은 사람도 살 수 있는 처지가 되는구나 싶어 기꺼웠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껴 쓰기 위해 처음과 끝은 천 생리대를 사용했는데 그 때는 몸이 훨씬 더 개운했다.

부끄러운 말이긴 하지만 나는 생리대를 조금 더 오래 쓰는 편이었다. 거짓말 같겠지만 센터 안에서는 때로 화장실을 갈 짬을 내기도 어렵고 대부분 움직임이 그리 크지 않으니 어지간하면 참을 만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다보면 가렵고 따끔거리기 일쑤고 기분이 영 찜찜한 것이 마치 무슨 불결한 물건 위에 그냥 걸터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루가 내내 찜찜한 적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그건 주책을 떨며 사는 나 같은 아줌마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아니 아줌마들이라고 다 나 같은 게 아니라 특별히 허름한 나 같은 아줌마들이나 주책을 떠느라 하는 짓인 줄 알았다. 그래도 정말 생리대를 살 수 없는 형편의 아이들이 있을 줄은 차마 생각도 못했다.

기사를 보면서 '너희들 근처에는 지역아동센터나 뭐 그런 도움을 받을 곳이 아무 데도 없는 거니?'란 안타까운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래도 이야기를 하면 어딘가는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있을 텐데, 정말 우리는 어쩌다 이 모든 것들을 아무 곳에도 누구에게도 선뜻 이야기할 수 없는 이런 각박한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그러나 나도 그런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자신의 무능이 온전히 자신의 책임으로만 여겨지는 세상에서 정말 얼굴이 두껍지 않고서야 차마 내 형편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기란 쉽지 않음을 말이다.

때로는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알고 싶지도 않을 때가 있다. 그저 나에게는 그런 슈퍼의 싼 물건이라도 사라지지 않고 많이 팔아주었으면, 그래서 이 자본주의의 끝자락에서 나와 자식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살아갈 수만이라도 있게 해주었으면 하는 눈물겨운 소망들만이 버즘처럼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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