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간략히 들려주는 데도 그것을 받아 적어보면 막상 어마어마한 양이고, 그 동안 내가 알고 지냈던 사람이 과연 맞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그이 안에 숨어들어 있다. 누군가 이야기했듯 자세히 보아야 예쁜 것이다.
그런 자기의 길고 복잡한 속내를 다 드러내고 사는 것이 아니므로 언제나 그러하듯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마을살이는 한참 뒤숭숭하다. 이 와중에 누군가라도 안녕히 잘 살고 있다면 살포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갈등의 한 중심에 서 있기도 하고, 또 다른 갈등들이 밀려오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도 하면서 여름 길목이 유난히 힘겹다. 6월 초입에 벌써 날씨가 이렇게 더우면 올 여름은 얼마나 더우려고 이러나 싶어, 날씨 걱정을 했다가 이 사람, 저 사람, 이 일, 저 일이 떠올리며 한숨을 쉬어 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저 묵묵히 시간을 견디어 볼 도리밖에 없다.
그런데...그 때가 언제더라...아마도 봄의 초입이었던 거 같다. 무슨 일인지 구로시장으로 들어서고 있던 나는 그야말로 '풋!'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 아주머니께서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지나가는 모습 때문이었다. 견종에 대한 눈썰미가 전혀 없으므로 실은 그 강아지가 정말 어떤지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언뜻 본 인상은 품에 안고 '둥기둥기어를 만큼 그리 귀해 보이지는 않았다. 강아지를 안고 가는 것은 어쩌면 복잡한 시장에서 얼른 볼 일을 보고 빠져나오고 싶은 주인아주머니의 바쁜 사정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편한 일상복에 앞만 보고 서둘러 가시던 모습이 이제와 생각하니 정말 그럴 것도 같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강아지가 안겨 있던 폼이다. 보통 강아지를 예뻐해서 안고 가는 그런 모양새와는 영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강아지를 자신의 가슴팍에 똑바로 세워서 오른팔로 강아지 배를 안고 가는 식이었다. 강아지는 배를 앞으로 쭉 내밀고 앞발은 아주머니 팔 위로, 뒷발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였다. 마치 무슨 짓이라도 하다가 걸려서 냅다 체포라도 된 냥 강아지 역시 뚱한 표정으로 그렇게 잠시 곁을 지나쳐 갔다. 강아지였을 뿐임에도 분홍빛 뱃가죽을 보란 듯이 내밀고 안겨 가는 강아지 모습이 살짝 민망해 잠시 걸음이 멈춰졌다.
아무리 봐도 그래서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것 같다. 눈으로 본 걸 그대로 옮길 수 없는 글 솜씨가 그저 한탄스러울 뿐이다. 어쨌든 아무렇지도 않을 그 모습이 영 잊을 수가 없어서 나는 길을 걷다가도 간혹 빙그레 미소를 짓고 혼자서 낄낄거릴 적도 있다. 이렇게 글로는 다 말도 못하는 그런 기분에 취해서 말이다.
마을살이도 딱 이럴 것이다. 말이나 글로 제 느낀 것을 고스란히 전할 수만 있다면 오해와 갈등 따위는 생길 틈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펄펄 뛰게 화가 나도, 아무리 억울하고 아무리 고마워도 그것을 제대로 전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스스로 그 점을 감안해서 듣고 말하고 읽고 써야 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그럼 작은 기억을 안식처 삼아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다음 행복이 찾아올 때까지 잠시 마을살이는 개점휴업을 하는 것도 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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