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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사이로 [2] '우리'라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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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사이로 [2] '우리'라는 두려움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20.02.14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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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들은 유난히 잘 운다. 기분이 상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어 툭하면 기분이 상한다. 기분이 상하는 것도 주로 비슷한 방식으로 상하는데, 우선 자신의 한 일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상대에게는 엄청 예민해서, 상대방의 미세한 몸짓이나 작은 얼굴표정 혹은 말투나 단어 하나에까지 맘에 거슬려한다. 그리곤 운다.

작은 다툼에 자신이 먼저 빌미를 제공했더라도 자기는 그냥 한 일이거나 조금밖에 잘못을 안했는데, 상대방은 봐주질 않고 심하게 군다면서 억울하다고 운다. 자기가 크게 잘못을 해서 꾸지람을 들을 상황이 되면, 선생님이 너무 심하게 혼찌검을 낸다면서 한 구석에 가서 서러워 운다. 만약 자기는 하나도 잘못을 한 게 없는데 다른 아이가 괴롭히기라도 한 날이면 아예 자리를 펴놓고 모두 날 미워한다며 엉엉 울어댄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보통 자존감이 낮고 관계에 신경을 많이 쓰는 아이들이 그럴 수 있다하니 작은 일도 꼼꼼히 신경 써 칭찬하고, 혼낼 때도 요령껏 눈치를 본다. 섣불리 달래서 기분만 낫게 하려 들다보면 과한 요구를 해오며 상대를 제 맘대로 하려는 눈치도 보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일관성 있게 대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가만 보면 일정 부분은 기질적으로 타고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또 그런 기질이 어릴 적 양육자 등과 관계 맺는 패턴이 이미 일정하게 영향을 미쳐서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대할 때 일정한 방식이 나오는 것도 같다.

돌봄이란 무릇 이런 모나고 뾰족한 구석을 서로의 관계로 문질러 둥글게 다듬는 과정인데, 이런 과정 속에서 서로 아프기 마련이다. 눈물, 콧물을 짜고 성내고 화해하고, 한참 이런 과정이 이루어져야 그제야 안심하고 제 안에 있던 여린 속내를 비로소 드러낼 수 있다. 그 때까지는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말고 그 과정을 오롯이 겪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의미 있는 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남들하고 그래도 어울려 살 만할 정도의 넉넉한 품성을 가진 사람들로 길러내는 것이 돌봄 교사들의 책무라 할 수 있다. 이는 부모가 길러주는 품성의 바탕을 토대로 그 사회의 문화와 특성이 배여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의 모양새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 일이란 결국 자신과 타인 및 세상의 다양한 측면을 잘 분간할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런 지혜가 채 영글기도 전에 아이들이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피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위로와 희망의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서로의 안전을 위해 서로를 멀리하고 기피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마스크를 쓰고 센터에 오면 열을 재고 꼼꼼하게 손을 씻도록 거듭 당부를 한다. 구김살 없이 대답을 하고 쪼르르 손을 씻으러 가는 아이들 얼굴에는 작은 그늘도 없다. 그리고 오늘도 어떤 아이들은 품에 안겨 한참 울기도 한다.

세상이 우리를 서로 멀리하라 일러도 우는 아이들은 누군가의 가슴을 파고들기 마련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서로를 안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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