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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살아있는 매뉴얼과 주민시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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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살아있는 매뉴얼과 주민시선의 '힘'
  • 김미영 이사장(구로학교안전사회적협동조합)
  • 승인 2015.10.16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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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날 일을 떠올리면 피가 거꾸로 솟고 심장이 오그라들고 온몸이 몸서리쳐진다. 차오르는 물속에서 얼마나 엄마, 아빠를 부르며 두려워했을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날 이후 지옥의 날을 살고 있는 유가족들은 아직도 길거리에 서있다. 진실을 인양하지 않는 정부에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구한다. 정부는 교묘히 보상금 이야기로 국민과 유가족들과의 관계를 이간질한다.

우리들은 잊지않겠다고 했지만 서서히 힘이 빠져 그저 지켜보는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비정한 모습이다.

그 이후로 안전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아이들은 안전교육의 대상이 되었고 어른들은 무슨 기구를 세우고 무슨 일을 강화하고 한동안 호들갑스러웠다. 그러나 그때뿐!

시리아 난민을 생각해본다. 조그만 엉덩이를 들어올리고 잠자듯이 엎드려있던 아일란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시리아 난민들은 국제사회에 이슈거리가 되지못했다.

서방 세계의 선진국들은 시리아 정부군을 돕든 반군을 돕든지간에, 민간시설이건 군사시설이건 아랑곳않고 폭격을 퍼부어대면서도 시리아 국민들의 안위는 염두에 없었던 것이다. 가족들과 평화롭게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위정자들의 욕심과 다른 나라들의 탐욕에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정든 고향을 떠난다. 시리아난민들의 고난의 행군은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도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는 아니다. 북한은 주기적으로 남한 불바다론을 이야기하며 위협하고 있고 한국 정부의 맞대응도 불안하기만 하다. 625전쟁이 완전히 종전된 것도 아니다.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하여 서로 총부리를 겨누지 않게 된다면 모를까, 여전히 북한 정부와 남한 정부의 으르렁거림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동네를 돌아본다. 전쟁과 같은 큰 위험은 매번 우리의 근심거리는 아니다. 또한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사장을 단단히 단도리하지 않아 흙과 나무 자재 등이 돌아다닌다거나 공사후 처리하지 않은 전선줄이나 통신선들이 아이들 손이 닿는 곳에 매달려있다거나 동네 도로에는 인도도 없는데 차들은 쌩쌩 많이도 달린다.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아이들이 위험해 보인다. 전선줄과 나무줄이 엉켜있어 불안해 보이는 곳도 있고 깨진 유리 조각, 신호등이 고장나 있는 곳, 쓰레기가 방치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곳, 전봇대를 감싸고 있는 틀의 날카로운 부분들, 도로가 패여있는 곳, 학교의 교문이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놀이터시설의 크고 작은 부품들이 빠져있는 등 소소하지만 충분히 안전사고가 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부분들을 찾아내는 눈을 갖게 되었을까? 매번 지나던 길이지만 이런 위험요소들을 대부분은 그냥 무심히 지나쳤고 관심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관심있는 지역 활동가와 학부모들이 힘을 합쳐 '구로학교안전사회적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안전지원단 활동을 하며 동네를 순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특별히 교육을 빡시게(?) 받아서가 아니고 우리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어디에 있나, 찾아보기만 해도 주변에 많이 보였다. 동네를 돌며 이런 위험요소들을 찾아내고 구청, 교육청, 경찰청, 한전 등 관계기관에 개선을 요구하는 일을 수개월간 해왔다.

간단한 것들은 바로 해결되기고 하고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이 일을 하며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한 관심도 깊어지고 동네를 알뜰살뜰 살피게 되는 주민으로 변모했다. 살기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자부심도 생겼다.

안전사고는 대부분 예방가능하다. 미국의 하인리히라는 학자는 300-29-1의 법칙을 제시했다. 안전사고가 나기 전에 300번의 사소한 징후가 발생하고 위험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29건의 작은 재해가 발생하며 위험요소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1번의 큰 재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가스와 수도와 도로와 모든 기반시설을 천만명이 공유하고 있는 현재의 거대도시에서는 작은 징후를 놓치면 그야말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불안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사고들을 보면 인재인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방가능하다는 것이다. 관공서는 관공서의 매뉴얼대로 철저히 원칙을 지키고, 주민들은 그 동네를 사는 주민들의 눈으로 점검한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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