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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06] 츄러스를 먹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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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06] 츄러스를 먹는 날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5.10.16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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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나서자마자 아이들이 재잘대기 시작한다. "샘, 오늘 완전히 좋은 날이에요. 점심에 츄러스가 나왔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질세라 옆에 아이도 한 마디 얼른 거든다. "네, 그리고 오므라이스도 나왔는데 맛있었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 배도 나왔어요, 그것도 너무 맛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결국 모든 걸 알게 되었다. 수요일, 단품 식사를 하는 날, 오늘의 급식 메뉴는 오므라이스에 김치콩나물국, 깍두기에 츄러스와 배 한 조각. 거기에 수요일은 '급식을 전부 먹고 잔반을 남기지 않는 날'인데 수요일은 대개 마음에 드는 식단이 나와서 잔반을 아예 남길 일이 없다는 것까지 말이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처음에는 의아했었다. '와, 츄러스가 어떻게 급식 시간에 나왔지, 그걸 직접 만드셨나?"하긴 무엇이 불가능하겠는가? 학교의 조리실은 센터의 급식실에 비하면 상당한 규모이니 츄러스 쯤이야 만들어 먹은 건 일도 아닐지 모른다.

그 날 밤, 파랑새의 저녁은 돼지등뼈를 넣은 시래기 감자탕에 김치, 오징어채무침과, 오이채무침과 김부각이었다. 감자는 따로 삶아서 냉면 그릇에 감자탕을 한 그릇씩 받기 전에 한 알씩 넣어주고 계셨다. 막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저녁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면 안되지만 나도 한 그릇을 먹고 조금 더 덜어 먹었는데, 두 그릇을 해치운 아이도 제법 된다고 한다. 개수대 옆에 감자 등뼈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만족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후식은 거의 챙기질 못한다. 대신 학교를 다녀오면 과일 등으로 약간의 간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 자랑삼을지 모를 일이나 그나마 생협의 친환경 식자재를 식재료로 쓰고 있다. 하지만 츄러스를 내놓을 형편은 못된다. 슬프게도 말이다.

왜 그런 걸 고민하냐고? 아마도 아이들과 함께 있어보면 단박에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아이들은 늘 즉시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파프리카가 나온 날 어떤 아이들은 상을 받아놓고 하염없이 앉아 있다.

왜냐? 파프리카를 못 먹기 때문이다. 차차 고쳐나갈 일이지만 그래도 그날 그 아이는 당장 파프리카를 먹을 수는 없다. 파프리카가 아무리 친환경 식재료로 만들어진 좋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그 아이에게만은 무의미하다. 그러니 그 아이는 "오늘 맛있었어요."하고 절대 좋은 반응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은 걸 먹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행복했으면 하는 데 마음을 쓰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무엇을 먹고, 얼마나 행복해하는지가 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눈앞에 있는 "오늘 밥은요..."하고 재잘거릴 텐데, 그런 말이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는 게 내게는 더 이상해 보인다. 그러니 츄러스를 줄 수 있고, 그런 츄러스를 먹고 행복해서 재잘될 수 있는 학교 급식 체계가 지닌 여러 장점이 너무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고 보면 얼마 전에 알려진 모 고등학교의 급식 사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도 재잘거리며 자기가 먹은 것, 본 일, 들은 일에 대해 다 말하고 다니는데, 어떻게 고등학교에서 급식과 관련하여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부실한 식사에, 급식비를 내지 않는 아이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한 것도 모자라, 아이들의 식자재를 빼돌린 것 같은 정황도 있다고 하니 참 학교에서 가지가지를 한다 싶다. 그것도 세상 물정 뻔히 아는 고등학생들 앞에서 그랬다는 것이니 아이들을 너무 무르게 본 것인지, 아니면 간이 부어 그런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왠지 그런 잘못에 대한 엄단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비단 급식으로 문제가 되었던 ㅊ고 뿐 아니라 한참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ㅎ고의 온갖 비리 문제도 속시원하게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기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수요일마다 전교조를 지키느라 서명을 받고 있는데, 한 쪽에서는 그런 일들이 판을 치니 참 기운빠질 노릇이다. 정말 괜한 데 와서 시비 좀 걸지 말고, 최소한 그런 데라도 제대로 엄벌을 해야 한단 말이다.

그런 학교의 감독자들은 스리슬쩍 봐주고 평생 연금 주고, 심지어 공로장 이런 것까지 주고, 제발 그러지 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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