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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95] 미야베 추리소설을 보는 쏠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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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95] 미야베 추리소설을 보는 쏠쏠함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5.07.17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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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히 세계적인 문학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다. 유명한 문학작품은 주로 책보다는 영화로 보았다. 하지만 이제 나이도 들어 어지간한 일에는 참을성이 좀 생기기도 하고, 잠도 줄어드니 그런 거나 한 번 도전해볼까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 들어 그런 거를 읽으면 왠지 좀 품위 있어 보일까 싶고, 도대체 왜 그리 유명한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야심차게 이 책, 저 책에 도전하다 별 재미를 못 보고, 큰 맘 먹고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다 개점휴업을 해버렸다. 뭔 얘기를 그리 시시콜콜하게 하는지 "아, 그래서 뭐가 어쨌다구요?"하고 성질이 뻗쳤기 때문이다. 날도 더워 죽겠는데 말이다. 안되겠다 싶어 일본 소설책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 책 한 권을 짚어들고 나왔다.

추리소설이라니 더운 여름에 간담을 서늘하게 할 그런 책이구나 하는 속단은 금물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일본의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기는 하나 시시콜콜하기로 치면 도스토예프스키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럼 뭐가 그리 다르냐? 까라마조프 형제들은 너무 말이 많다. 하긴 그러고 보니 미야베의 인물들도 말이 많긴 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좀 곤란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래도 더 좋은 걸 어떡하냔 말이다.

미야베의 책은 절대 잔인하지는 않다.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도 '칼에 찔려 죽었다' 뭐 그 정도의 묘사로 끝이다. 범인을 찾아가는 기본적 추리소설의 플롯을 따르기는 하지만 재미가 그것만은 아니다. 그녀의 책을 보면 무엇보다 '사람을 보는 안목'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를 들어 심부름을 온 어린 아이가 어른 앞에서 공손하게 굴 줄 알면서도, 제 몫을 당당하고 야무지게 챙길 수 있도록 집에서 단단히 가르침 받은 모양이라고 주인공이 주억거리는 장면이 있다. 늘 게으르다고 표현되는 주인공이지만 실은 얼마나 예리하게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있는지 그런 기민한 안목은 읽을 때마다 재미지기가 한량이 없다.

구로도서관에는 거의 10여권 남짓 그녀의 책들이 있고, 거의 대부분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이야기처럼 조금은 게으른 무사 헤이시로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 주인공 주위의 모든 사람은 각자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 작가 미유키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마다 풀어놓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니까 책들은 마을인 셈이다. 성실한 사람, 우직한 사람, 영리한 사람, 기괴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등등 모두가 각기 어울려 살면서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의 인생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마을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결국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결코 무겁지는 않지만 성실한 답이 여러 무늬로 어울려 있는 그런 마을이다.

나이가 든 창녀 오쿠메는 우직한 반찬가게 과부 오토쿠에게 구박을 받아가며 반찬가게 일을 배운다. 성실함으로 인생을 일궈온 오토쿠는 오쿠메를 타박하기 일쑤이지만 오쿠메는 그렇게라도 자기를 가르치고 이끄는 오토쿠의 진심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타박에는 그래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헤이시로는 남몰래 오쿠메를 위로하고, 그 타박에도 오토쿠의 진심을 알고 또 오토쿠에게 힘이 되어 주고자 애쓰는 오쿠메에게 진심으로 감탄한다.
정말 사람이란 결국 미유키가 그리고 있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어차피 혼자서는 천지 사방팔방에 뻗쳐서 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들이니 그저 하루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곳, 그 정도 안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의 진심을 알아주고, 나를 알아주고, 나를 인정해주면 그것으로도 족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이란 말이다.

그러니 남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남의 진심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하고, 사람 됨됨이도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 아니, 최소한 그런 안목이 없다면 남에게 감탄이라도 잘 해야 한다.

"우와! 정말 그럴 것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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