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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59]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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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59]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4.11.01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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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를 이사하며 다시 소망을 펼쳐본다. 다시 식물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번 있던 곳에서 이사를 할 무렵에는 두어 개의 화분만을 남기고 모두가 말라죽은 뒤였다. 식물이 살아서 주는 그 청정함도 인상 깊지만 죽은 뒤 말라비틀어진 남은 것들을 보는 씁쓸함 역시 작지 않은 느낌을 준다.

물을 주지 않은 화분 속의 흙은 메마르고 갈라져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갑갑함이 느껴진다. 죽은 식물의 줄기대라도 흙 밖으로 삐쭉 솟아올라있으면 시꺼멓게 타들어간 속내가 고스란히 보이는 것 같아 더 가슴이 답답하다. 그 모습에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날은 속절없이 물을 부어본다. 이 세상에 생명수가 어디 있을까 만은 그래도 하면서 말이다.

작은 화분 속에서 키우는 것들은 더 세심히 돌봐야 한다. 화분이 작으니 물이 들어와도 그걸 흙 속에 품어있는 양도 영 작은 탓이다. 꼭 작은 품을 지닌 어떤 아이들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처음부터 큰 그릇, 작은 그릇 타고난 사람들이 정말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좀 더 참을성이나 융통성 혹은 어울리는 능력이나 적응력을 좀 더 낫게 태어난 아이들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그 집안의 강력한 유전자의 힘이 아니라면 그것은 모태 환경에서 일정하게 영향 받은 탓일 수 있다는 가정도 가능해진다.

어떤 아이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축복받고 배려받으며 좋은 음식이나 좋은 모태환경을 위해 극진한 배려를 받으며 자랄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아이들은 잉태되는 것도 모를뿐더러 심지어는 생기지 말았으면 혹은 생기기 말아야 하는데 하는 어머니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함께 경험하는 것을 탄생의 첫 기억으로 깊이 간직하고 있는 아이도 있다. 

두 번째 아이는 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까지 내내 작지 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릴 텐데 이런 아이의 그릇이 크길 바라는 것은 어쩜 너무한 바램일지 모른다. 물론 꼭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 가는 것만은 아니어서 대충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아이라면 주변 사람들이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다른 화분들은 서너일 심지어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을 주어도 충분하지만 이 화분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지난 번 건강가정지원센터가 가족봉사단과 함께 열었던 주말장터에서 사온 화분이 꼭 그렇다. 손바닥을 오므린 것보다 더 작은 화분에 식물을 가꾸자니 매일매일 세심하게 물을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지난번에는 일이 있어 서너 일을 물을 주지 못했더니 급기야 새끼손가락 손톱만했던 이파리가 말라죽는 일이 생겨버렸다.

무엇인지도 모를 이파리를 맨 땅에서 얻어와 조심조심 키우고 있었는데 속절없이 놓치고 나니 아쉬움이 커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정말 그래도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매일 하는 것처럼 물을 주었더니 기특하게 다시 잎이 나기 시작해서 정말 손톱보다 작은 이파리가 여리여리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얼마나 여린 잎인지 이파리가 투명할 수도 있겠단 착각이 들 정도다.

그 즈음에 그 아이가 왔다. 엄마랑 밑에 지방에 살다가 한 해전쯤 이사를 하고 집에만 있었다는 아이다. 제법 등치가 있는 녀석인데 통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 동안 친구들이랑 갑자기 헤어진 마음으로 쓸쓸함이 가득했다는 것도 얼마 전 알게 되었다.

이 둘을 요즘 다른 화분들과 다른 아이들과 함께 공들여 키우고 있다. 물을 주어도 조금밖에 가슴에 품지 못하는 화분과 아이들에게 매 순간 물을 주어가야 하는 일이 물론 때로는 아주 벅차다. 하지만 손톱만한 투명하리만치 여린 이파리가 주는 행복감을 알아버린 이상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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