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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57] '구로동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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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57] '구로동 괴담'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4.10.18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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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에는 목요일마다 센터 아이들에게 시달렸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새겨듣는 버릇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 번 들려주었던 무서운 이야기에 아이들이 맛을 들여 아예 날을 잡고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통에 이야기 밑천이 딸려서이다.

처음엔 이야기를 듣고 집에서 화장실을 못가서 실수까지 했다는 말에 '호! 내 이야기 실력이 그 정도인가?'하고 우쭐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 점점 더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지어내게 되었다. 이야기가 점점 더 무서워져 가니 아이들도 뚜렷이 호불호가 갈리게 되어 어떤 아이들은 일주일 내내 그 날만 기다리는가 하면 어떤 아이들은 시작도 못하게 하였다. 그러다 이사를 오며 할 일이 많아지며 이야기 시간은 그만 흐지부지 되었다.

그런데 그런 무서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구로동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주로 다문화 이주민들과 관련한 좋지 못한 소문들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게 "설마..."하는 반응이라도 내보일라치면 상대방은 펄쩍 뛰며 어찌 이 말을 못 믿는가 하고 열을 낸다. 처음에 시작된 이야기들은 주로 혐오나 멸시의 감정들이 섞인 내용들이 많았다.

주로 공중도덕을 잘 지키지 않아 함께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지인을 밤늦게 집 근처에서 택시를 태워 배웅하는데, 갑자기 "구로동에서는 택시 기사들이 무서워서 밤늦게 승객들을 잘 태우려하지 않아 택시잡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이야기가 이제는 혐오감을 넘어서 공포의 수준으로 옮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회학이나 심리학의 관점을 빌면 이런 감정은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주민들은 언제나 원주민들의 이런 저항 속에서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괴담은 늘 모호한 감정에 힘을 실어주는 일정한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앞에서 처신하기가 참 쉽지 않다. 주로 본인이 경험하거나 자신도 주변의 가까운 사람에게 들은 말을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좀 곤란하단 태도를 지으면 마치 상대의 차별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것 같아 서로 민망해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본시 적응의 과정은 늘 긍정적이거나 평화롭지만은 않아서 조화는 그 전의 서로의 구분과 차이를 분명히 하는 과정이 분명히 필요하다. 어쩌면 그런 과정을 겪느라 마음이 분주한 것 일지도 모르는데 "넌 그런 식이구나."하고 불필요한 딱지를 붙이고 그로써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은근히 내세우는 꼴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편감을 호소하는 이야기들이 이런 식의 괴담 수준으로 넘어가면 이는 공동체가 주목하고 조심해야 하는 일종의 징후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언가 징후 뒤의 위기를 알아차리고 빠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인데, 무엇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변화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혹은 사회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괴담의 핵심에는 정체성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구로동은 도대체 이제 누구의 동네인가 라는 쉽지 않은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자라는 아이들이 공연한 혐오감이나 모멸감에 빠져 쓸데없는 데 힘을 쏟고 살지 않도록 우리 어른들이 빨리 지혜롭게 마음을 모아야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면 마음을 툭 터놓고 살아보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주민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를 꺼리기 보다는 그런 학교를 국제학교로 만들어 격을 올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인데 괴담 따위에 미혹되어 마음이 흔들리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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