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이다. 12월 1일부터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다.
기본법 제정은 획기적인 일이다. 승자독식의 시장질서 체제를 극복하고 함께 상생하는 새로운 길을 여는데 협동조합이 큰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기본법 제정이 곧 협동조합 활성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필요와 열망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체다. 제도가 완벽하더라도 '공통의 필요와 열망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협동조합을 이해하고, 공통의 필요와 열망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해결해 보고자 하는 사람이 부족하다. 이것이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큰 산이다. 또 한 가지는 시장질서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협동조합이 경영체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의 문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중심이 원칙이지만 불가피하게 시장과도 관계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경영체로서의 협동조합'을 일구는 일은 쉽지 않다. 끝으로, 불공정한 게임 룰 안에 놓인 협동조합을 어떻게 그 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협동조합이 발전하려면 오랫동안 이 사회를 지배했던 전통적인 국가·지역 개발 전략과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긴 고착화된 불공정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
기본법은 제정됐지만 협동조합이 활성화 될 수 있는 토양은 척박하다. 이를 극복하고 협동조합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답은 우리 안에 있고, 답의 핵심은 '연대'가 아닐까 한다. 친목도모나 세(勢) 규합을 위한 연대가 아닌 '가치와 사업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는 사회적 경제조직이 클 수 있는 토양이 척박한데다 사업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역의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이 모여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분야와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공동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인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 교육 사업은 물론 공동의 금융기반을 구축하는 일, 자립을 위해 조직 간 구체적인 협업(協業)체계를 구축하는 일 등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이러한 일을 해 나가다보면 가치와 사업의 기준, 모델, 규모, 효과 등이 보일 것이고 지역사회를 바꿀 '계획'도 마련할 수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에는 연합회와 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연합회를 구성할 수 있는 협동조합이 부족한데다 몇몇 협동조합만으로는 주민 삶에 필요한 부분을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을 비롯해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자활센터 등 다종·다양한 조직과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사항은 조직중심, 임직원 중심의 연대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조합원과 회원 등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그들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참여를 이끌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연대는 힘을 잃게 된다.
원주에서 협동조합운동을 일군 무위당 장일순 선생께서는 협동조합으로 "만민이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에 물려줄 아름다운 지역공동체를 위해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 경제 조직을 활용, 새로운 상상의 나래가 들불처럼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