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5-10 11:31 (금)
[매봉산이야기 24] 태풍 '볼라벤'에 긁히다
상태바
[매봉산이야기 24] 태풍 '볼라벤'에 긁히다
  • 송희정 기자
  • 승인 2012.09.04 11: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년 전 이맘 태풍 곤파스로 20층에 살고 있는 우리집 베란다 창문이 깨져 많이 놀란 적이 있었다. 매봉산의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등산로는 한동안 이용이 어려울 정도였고, 쓰러진 나무를 정리하는 전기톱 소리가 아파트를 울렸다. 그런 곤파스보다 더 강한 태풍 볼라벤이 서해를 지나간다.


 베란다 방충망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자물쇠를 달아 고정시켜 놓고, 유리창은 테이프를 붙인 뒤 그 위에 물 묻힌 신문지를 덕지덕지 붙여 30~40분에 한번씩 신문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뿌려 태풍에 대비하고 있었다.


 바람소리와 함께 매봉산 나무들이 서로 부딪혀가며 흔들리는 "쏴악 쏴악"소리가 베란다유리창의 흔들리는 소리만큼 무섭게 들린다. 숲속 동물들의 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다. 이 무서운 바람에 잘 숨어는 있는지.... 작은 부엌 창으론 눈발 날리듯 나뭇잎들이 하늘에 날리고 있다. 그렇게 공포스러움을 밤새도록 안기고 볼라벤은 지나갔다.


 다음 날 오른 매봉산은 밤새 느꼈던 공포에 비하면 피해가 거의 없었다. 거센 바람에 떨어져나간 나뭇잎과 열매들만이 숲속과 길가에 수북이 쌓여 바람의 세기를 가늠해 볼 뿐이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며 매미는 남은 여름을 열심히 울어댔고, 나무 가지 사이사이에서 산새들은 울어댔고, 닭의장풀과 벌개미취꽃은 등산로 주변에 피어있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동부골든아파트에서 잣절생태공원 방향으로 리기다소나무 두 그루의 줄기가 끊어진 채 쓰러져 있었지만 등산객들의 이용에 불편을 주지는 않았다.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우리와 달리 숲의 식물들에게는 드물게 찾아오는 기회의 순간이다. 그동안 큰 나무가 버티고 있어 주위의 작은 식물들에게는 햇빛을 받는 것조차 제한이 되었지만 이제는 온전한 빛을 받으며 성장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제 숲의 주인이 되기 위한 작은 나무들의 경쟁만이 남아 있다. 또한 쓰러진 나무는 그동안 독식해왔던 자연의 혜택을 숲의 생명들에게 온전히 내어 놓아 양식과 안식처를 자처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디하나 허투루이지 않은 숲이지만 연이어 북상하는 태풍 덴빈에 대한 걱정은 어쩔 수 없다. 숲이건 사람이건 피해가 없기를 바랄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