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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어린스승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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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어린스승의 가르침
  • 성태숙(구로파랑새 나눔터 센터장)
  • 승인 2012.05.29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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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 날에 아름다운청소년센터를 다니는 몇몇 아이들이 감사의 편지를 직접 써왔다.


 초등학생까지는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에서 방과후 돌봄을 받다가 아름다운재단의 후원으로 청소년 전용 방과후 센터가 생기게 되면서 옮겨간 아이들이 편지를 써온 것이다.


 아마도 단체로 이리 기특한 일을 한 것을 보면 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교사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쨌든 뜻밖의 큰 선물을 받고 보니 기쁘기 한량없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어른들은 흔히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늘 학교 선생님만 같지 않은 느낌으로 대하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하기야 스승의 날이라고 학교 교사들이 쉬는 날에도 대신 아이들을 돌봐야하는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이 어찌 동급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차별을 이해해보지만 때로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스승의 날 편지를 받고 또 주위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며 그런 속 좁은 소리는 이젠 거둘 때라는 다짐을 거듭하게 되었다.


 편지 한 장을 꺼내드니 H가 정말 쓰고 싶어서 쓰는 편지라는 고마운 말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바람 잘 날 없는 지역아동센터 교사로 10년을 버티게 해준 힘은 실은 이렇게 날 사랑해준 아이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누구보다 나의 성장을 믿어주고 일일이 솔직한 말로 가르치고 예뻐해 주는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스승의 날 오히려 이 아이들에게 감사를 전해야 옳다.


 좁디좁은 센터에 다 큰 아이들과 같이 지내기가 어려워 청소년센터를 만들었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좋다고 떠나던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허전한 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 떠난 아이들이 청소년센터의 이런저런 점이 마음에 든다고 한껏 기세를 올려 이야기하면, 남아 있던 아이들도 궁뎅이를 들썩거리는 것을 보며 무언가 내게 부족한 점이 많은가 보다 남몰래 부끄럽기도 하였다. 내 품을 떠나면 날 몰라라 하지 않을까 불안스러웠다. 하지만 의젓하게 자라 진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성장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다짐해 본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 교사를 인생의 롤 모델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교원임용고사가 '임용고시'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때이라 이제 학교 교사는 언감생심의 일이 되어 버렸다. 대신 커서 선생님같은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 되겠다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얼마나 부끄러운 칭찬인지. '선생님 같은'이란 말 한 마디가 천근만근 무게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청소년센터 아이들이 대여섯 명이나 몰려 와서 편지를 전해주고 간 의미도 여기에 한 줌 보탠다. 동네 엄마로, 동네 선생님으로 살아온 세월이 빛나던 순간이었다. 아직도 가방 속에서 반짝거리는 순간을 간직한 편지들을 바라보며, 떠난 후에도 다시금 나를 이끄는 우리 어린 스승들의 한 수 위 가르침에 고개를 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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