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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1 흔들리는 아이들]'마음 빗장'열어줄 사람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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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1 흔들리는 아이들]'마음 빗장'열어줄 사람은 누구?
  • 송희정 김경숙 송지현 기자
  • 승인 2011.10.17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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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해라 상담 되레 상처... 사고치면 타학교 전학남발...지역사회 차원 지원책 절실

 구로구에서만 지난해 389명의 초중고교생들이 학교를 떠났다. 전체 학생의 0.8%에 해당하는 수치다. 학교를 그만뒀다가 다시 복귀하는 비율도 감안해야 하지만 매년 수백 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떠난다는 사실은 교육자와 학부모로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다. 내 이웃의 아이일 수도 있고, 혹은 내 아이일 수도 있는 구로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는 왜 끝까지 우리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호 아이들이 들려준 절망 혹은 희망의 이야기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통계와 일선교사 및 현장 활동가가 전하는 우리아이들의 '오늘'을 들여다본다. 지난 호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쓴다. 또한 현재 아이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교사와 활동가 역시 가명을 사용 한다 < 편집자주> *                                                                                                        

  ① 흔들리는 우리아이들을 만나다
② 통계와 현장이 말하는 우리아이들의 현주소
③ 지원프로그램, 이대로 좋은가
④ 선진사례를 가다    
⑤ 전문가가 말하는 진단과 대안  


    구로구 모 지역아동센터의 박정민(가명, 여) 교사는 지난 6월과 7월 두 달 동안 민지(가명, 초6)의 등굣길 동무가 돼줬다. 손잡고 나란히 걸으며 콧노래라도 흥얼거렸을 듯싶은데 실상은 다르다. 매일 아침이 "학교 안 가겠다"며 떼쓰고 욕하는 민지와의 한판 전쟁이었다.


 지난해 가정방문을 통해 알게 된 민지의 생활환경은 참담했다. 가난한 살림에 우울증을 앓는 엄마,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는 남동생, 밖으로만 나도는 언니. 민지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은 뚱뚱하고 지저분하다며 자주 민지를 놀려댔다. 수업도 잘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영어수업시간에는 말없이 화난 표정으로 앉아있기만 했다. 잘 놀다가도 학교 갈 시간만 되면 "배가 아프다"며 앓아누웠다. 민지의 결석일수는 학업 '유예' 기준을 훌쩍 넘어섰다.
 
 민지야 학교가자
 박 교사는 당장 민지의 결석부터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아침 일찍 민지 방에 쳐들어가 으르고 달래 일단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온 뒤 어떻게든 학교까지 데리고 갔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교문 앞에 기다리고 섰다가 함께 센터로 직행했다. 박 교사의 등하굣길 엄마 역할은 여름방학 직전까지 계속됐다. 그 사이 민지 엄마와 동생은 지역복지시설과 연계돼 체계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게 됐다. 여름방학이 끝나자 박 교사는 민지와의 오랜 줄다리기가 끝났음을 직감했다.


 "이제 학교 안 간다는 얘기를 하루 한 번씩밖에 안 해요(웃음). 센터에 제일 먼저 오고, 센터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시작했죠. 겨울 발표회 때는 연극 주인공으로 무대에 설 거예요. 민지 안에는 열정과 끼가 있어요. 자존심도 세고요. 제가 그걸 아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


 민지와 박 교사의 이야기는 학업중단 위기학생을 말할 때 동전의 양면을 모두 보여주는 사례다.


 빈곤, 가정불화, 학습부진, 왕따 등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위기상황에 직면한 아이들도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이자 동시에 이러한 관계맺음이 현실에선 거의 드물다는 점에서 '절망'이 되기도 하다.


 흔들리는 우리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민지의 사례처럼 끝까지 포기 않고 애정과 정성을 쏟는 '정서적 지지자'를 만나고 대안공간에서 보살핌 받을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채 학업을 중단(유예)하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행동이 심각한 경우 타 학교로 '전학(강제전학)' 조치된다.
 
 복귀율 초교 85%, 중교 70%
 지난 학기 구로구에서만 389명의 학생들이 학업을 등졌다. 그동안 누적돼 온 학교 밖 청소년 수는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학업중단이 아닌 학적부상 '유예'라고 명기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장기결석 일수가 3개월을 넘을 경우 유예처리된다. 이는 말 그대로 학업을 잠시 유보한다는 뜻일 뿐 학생이 원하면 다시 복귀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권교육 안으로 편입되길 거부하는 학생 수가 적잖다.

 


 윤명화 시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남부교육지원청 관할 초중교의 복귀율은 초교 85%, 중교 70% 정도다. 복귀학생을 제한 실제 학교중단율은 0.11%로 집계됐다.


 학교 관계자들은 비록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복귀학생들의 재유예 또한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유예의 배경이 된 위기상황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다시 학교에 돌아오더라도 악순환의 연속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김혜완 구로중학교 지역사회전문가는 "1년 가까이 학업을 유예했다가 복귀한 학생의 경우 아래 동생들과 함께 공부해야하는 탓에 적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며 "학교가 학생을 유예시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이유는 복귀를 하더라도 또다시 부적응상태에 놓이기 쉽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만 아니면 돼
 학교는 장기결석이 잦은 학생들에 대해 출석독촉장을 가정에 발송하는 한편 학생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상담은 학급담임이 일차적으로 책임지지만 사안의 경중에 따라 학내 상담교사 및 상담요원이 맡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이 마음의 빗장을 열고 교사와의 관계맺음에 성큼 다가서면 천만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상담 과정에서 되레 상처를 입는 경우가 적잖다.


 이재숙 남부Wee센터 상담교사는 "학업중단 위기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적잖은 상담이 교육의 관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상담을 받더라도 결론은 '공부해라'로 끝나기에 실제 도움 받으러갔다가 답답함을 안고 오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징계를 받은 학생의 경우 학교상담이나 교내·사회봉사, 그리고 외부교육기관의 특별교육 등의 대상이 된다. 의무교육인 초중고교의 경우 '퇴학' 징계는 불가능하다. 대신 사안이 심각한 경우에는 '전학(강제전학)' 조치된다. 일단 한번이라도 전학 조치된 학생들은 어느 학교를 가든 '문제아'로 낙인찍혀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힘들어진다. A학교에서 포기한 아이는 B학교에서도 쉽게 포기되는 식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모 중학교 관계자는 "학교장 간의 협의에 의해 문제 학생들이 맞교환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교사들 사이에 이미 소문이 퍼져 전학 온 학생은 요주의 대상이 된다"면서 "전학조치 된 학생들은 새로운 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결국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마음의 문이 열릴 때까지
 수진(중3)이는 '비공식적'으로 유예처리 대상이다. 결석일수 3개월을 넘긴지 오래다. 하지만 수진이는 지금도 학교를 다닌다.


 수진이의 결석일수를 '비공식적'으로 덮어준 이들은 교사들이다. 수진이는 수업 중에 '공식적'으로 음악을 듣는 유일한 학생이다. 다른 친구들이 수업에 열중할 때 수진이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 책상에 엎드려서 음악에 심취한다. 수진이의 음악감상을 '공식적'으로 허용해 준 이들도 바로 교사들이다. 수진이의 꿈은 소울뮤지션이다.


 "공부하다가 토 나올 뻔 한 적도 있어요. 학교랑 저랑은 안 맞아요. 강압적인 분위기도 싫고 시끄러운 것도 싫어요. 음악 하겠다고 학교 안 나오고 방황하던 절 붙잡아 주신 게 샘이에요. 제 멘토이자 빽이죠. 샘한테는 죄송해요. 맨날 학생부 들락날락하는 저 때문에 주변 샘들 눈치 보시고…. 남은 두 달 간 꼭 출석해서 학교 졸업장 딸 거예요."

 

 

 수진이의 멘토이자 빽인 '샘'은 모 중학교의 생활지도부장인 오성지(가명, 여) 교사다. 오 교사는 교내 학업중단 위기상황에 놓인 학생들을 대할 때 원칙이 하나 있다. 아이 스스로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자각할 때까지 지지와 격려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오 교사는 "학생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식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칭찬과 지지를 통해 천천히 조금, 조금씩 다가서야 한다"며 "교사가 옆에 붙어서 정서적으로 교류하면 학생들은 변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서 대안 찾아야
 학생에 있어 교사의 영향력이 크다는 데는 교사들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과 근무여건 등을 들어 난색을 표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한 교사는 "진보교육감이 들어선 이후 조금씩 변하고는 있지만 학교현장은 여전히 성적 중심으로 돌아가는 터라 불안정한 아이들보다는 안정된 아이들에게 관심을 많이 쏟는 게 사실"이라며 "게다가 교사 1인이 처리해야할 잡무도 많다보니 생활지도나 상담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일부 교사들은 학교 밖 지역사회에서 대안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교사가 상담까지 병행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전문상담인력을 채용하거나 지역사회 활동가들의 역할을 좀 더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


 여운모 오류중 교사는 "교사는 교육적 관점에서 학생들을 대하기 때문에 상담을 하더라도 '공부해라'식의 결론을 내리기 쉽다"며 "우리아이들이 가난한 삶 속에서도 자존심을 가질 수 있게 하려면 지역마인드를 갖춘 활동가들이 초교 때부터 대학진학 전까지 지속적인 관계맺음 통해 단순 학습이 아닌 문화, 복지 차원의 지원을 쏟아 건강한 삶의 전망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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