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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여행 6] 돈만 있으면 한국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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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여행 6] 돈만 있으면 한국이 최고?
  • 박홍순 작가
  • 승인 2022.10.31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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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가 골목
 롯데백화점 잠실점 
 롯데백화점 잠실점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

가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접한다. 참고할 수 있는 지표는 있다. 흔히 '행복지수'를 기준으로 순위를 꼽는 경우가 많다. 가장 널리 언급되는 지표가 유엔(UN) 자문기관인 '지속 가능한 개발 솔루션 네트워크(SDSN)'에서 발표하는 자료다. 발표 때마다 약간 변동은 있지만 1위를 비롯해 최상위권은 핀란드·덴마크·아이슬란드·스위스·네덜란드 등이 차지한다. 10위 권에서는 캐나다·미국·독일·영국·프랑스 등이 경쟁한다. 

한국은 54~62위 안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한국 앞뒤에서 순위 경쟁하는 나라는 아르헨티나·그리스·필리핀·태국 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좁혀 놓고 보면 더 심각하다. 한국의 경제력은 약 10위 정도로 평가받지만, 행복지수는 38개국 가운데 35위 내외로 최하위권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도 이러한 현실을 "세계 10위 경제 대국인 한국이 국민 삶의 만족도는 OECD 최하위권"이라며 심각하게 여긴다. 

우리가 잡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막연하게 주로 언급하는 살고 싶은 나라들도 UN 행복지수 상위권을 차지하는 나라들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아주 간단한 변수를 추가하는 순간 전혀 다른 답이 나온다. 바로 돈이다. "돈만 있으면 한국이 최고지!"라는 말이 나오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입가에 알게 모르게 쓴웃음이 스치지만 말이다. 혹은 한국 사회를 비판하다가도 이 말로 자신을 위안한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한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돈과 관련된 여러 요소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소비를 통해 돈의 위력이 발휘되는 면이 강하기에, 소비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풀어보자. 백화점은 소비의 상징적 공간이다. 위의 <롯데백화점 잠실점> 광경은 한국에서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다. 서울은 하나의 구만 해도 주요 거리에 서너 개의 백화점이 성처럼 들어서 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 거대한 주차공간을 갖춘 대형 쇼핑몰까지 더하면 훨씬 늘어난다. 백화점 매장보다 더 많은 상점이 모여 있는, 지하철과 연결된 지하상가까지 고려하면 비교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뭐든 언제든 살 수 있는 나라

한국은 대형 쇼핑몰의 수만이 아니라, 뭐든지 언제든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다. 유럽 대도시는 늦은 밤이 되면 거리가 한산하다. 밤 8시 정도만 돼도 상점이 대부분 문을 닫는다. 여행객들이 여행지의 자유를 만끽할 마음을 먹어도 인적이 드문 거리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국의 거리는 늦은 밤이 되면 더 깨어난다. <서울 상가 골목> 광경은 특정 거리로 한정되지 않는다. 서울과 지방 대도시의 웬만한 상가 거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거리는 밤이 무색하게 환하다. 건물을 수놓은 화려한 조명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도시의 밤 문화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예 밤새도록 발길이 이어지는 거리도 적지 않다. 

돈만 있으면 집에서도 24시간 편하게 쇼핑을 즐긴다. 스마트폰 배달 앱을 사용하여 집에서도 소비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외국에도 배달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한국은 온라인으로 못 시킬 음식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30분 정도면 집으로 배달된다. 늦은 밤은 물론이고, 비나 눈이 오는 날이라 해도 오토바이 배달은 멈추지 않는다. 식료품이나 생활용품을 비롯한 일반 상품도 얼마든지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다. 보통은 다음날, 늦어도 이틀이면 택배가 도착한다. 심지어 몇 년 전부터는 새벽 배송이 일상화되어 있다. 

중산층 가정만 봐도 한국이 소비사회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는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거실과 방이 최신형 전자제품으로 가득하다. 대형 평면화면 텔레비전이 거실의 주인 자리를 차지한다. 냉장고는 양문을 사용하는 대형 용량인데다 요즘에는 별도로 김치 냉장고를 둔 집이 많다. 세탁기에 더해 건조기까지 구입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중이다. 게임이 가능한 고사양 컴퓨터도 기본이다.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온 식구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서울 상가 골목
서울 상가 골목

 

소비사회 속 '사회적 미숙아'

일상적인 대량소비가 실현되려면 소비자가 자기의 재정 능력 이상의 소비에 나서도록 유인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소비가 더 많은 행복을 보장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는 오랜 교육 과정, TV를 비롯한 미디어, 기업의 마케팅 등을 통해 소비의 미덕을 전파한다. 인간과 삶의 가치를 내면이 아닌 상품 속에서 발견하도록 만든다. 비싼 집·자동차·옷·장신구 등을 소비할 때 성공한 인생이라는 사고방식을 퍼뜨린다. 

특히 우리 의식이 자기 '과시'를 중시할 때 생활에서의 실질적 필요 이상의 과소비가 성공적으로 조장된다. 베블런Veblen은 《유한계급론》에서 "좀 더 훌륭한 재화를 소비하는 것은 부의 증거이기 때문에 명예로운 일이 된다. 반면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기준에 미달하는 소비는 열등함과 결함의 징표가 된다."라고 한다. 

타인과의 비교에 바탕을 두고 우월한 인정을 얻으려는 과시 욕구를 부채질한다. 과시적 소비가 성공적인 인생의 징표로 여겨진다. 기업과 사회는 신용카드와 각종 할부제도, 집이나 신용을 담보로 한 대출로 과시적 소비를 뒷받침한다. 

한국은 자본주의가 훨씬 일찍 발달하고 경제력도 앞서 있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 비해 소비사회 논리가 더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어떤 나라보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언제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깊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세계 제일의 소비사회가 주는 빛보다 그늘이 더 짙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사회가 개인에게 사실상 강요하는 '평균적 소비'를 위해 거의 전 생애를 노동에 바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바라는 평균적 소비는 중산층 수준이다. 대도시의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승용차를 소유하며, 신형 가전제품을 갖추고, 가족과 함께하는 여름휴가와 종종 즐기는 외식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가혹하다. 

평균적 소비를 위해 성실하게 주어진 노동에 전념한다. 장시간에 걸친 강도 높은 노동이 매일 반복될 때 정신과 몸은 지칠 대로 지쳐서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고갈된다. 내면의 풍부함을 기르기 위해 독서나 문화·예술을 통해 교양을 쌓는 일은 사치스러운 행위로 전락한다. 지친 몸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릴 자극적 유흥문화에 집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비의 자유는 확대될지 모르지만, 인간 자체는 가장 억압적 상태에 빠진다. 소비사회에서 소비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사회적 미숙아가 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홍순 작가 인문학·사회학 작가. 고척초등학교·오류중학교·우신고등학교를 나왔고, 지금도 구로구에 살며 집필 활동을 한다.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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