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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1] 울고있는 우리 아이들, 학업중단 위기청소년들의 절망과 희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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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1] 울고있는 우리 아이들, 학업중단 위기청소년들의 절망과 희망이야기
  • 기획취재팀
  • 승인 2011.10.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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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우리아이들, 지역사회가 함께 키우자

  흔들리는 우리아이들을 만났다. 만나기까지는 힘들었지만 한 번 자리가 마련되자 가슴에 담아뒀던 속 깊은 얘기들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아이들이 들려준 학교와 가정 이야기에는 빈부격차, 무한경쟁, 학벌주의, 차별, 폭력 등 그간 한국사회가 빚어놓은 병폐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런 현실 속에서 나름의 길을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어찌 보면 흔들리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일지도 모른다.


 학업중단 위기학생과 학교 밖 청소년들을 지역사회가 어떻게 보듬고 함께 키워나가야 할지 최선의 정책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 그 첫 번째는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목소리로 전하는 절망 혹은 희망의 이야기다. 한 번도 수면 위로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지 못했던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싣는다.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흔들리는 우리아이들을 만나다
② 통계와 현장이 말하는 우리아이들의 현주소
③ 지원프로그램, 이대로 좋은가
④ 선진사례를 가다    
⑤ 전문가가 말하는 진단과 대안 

 ■  기획취재팀 _ 송희정·김경숙·송지현 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경희(중3)는 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로 통한다. 냉랭한 눈빛으로 "학교생활 반은 욕먹기, 반은 까이기"라고 말한다.


 문제아 낙인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교실 벽에 '000샘 X나 싫어'라고 썼다. 모르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반 친구가 일러버렸다. 선도위원회가 열리고 아빠가 학교에 오셨다. 그때부터 일만 생기면 매번 아빠가 학교에 불려 다녔다.


 경희는 "아빠한테 제일 미안해요. 나 때문에 죄인처럼 불려 다녀요. 나도 엄청 예쁨 받고 자랐는데… 학교 다니기 정말 싫어요"라며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학교와 주변 어른들이 무심코 툭 던졌을 말 한마디에 경희는 치를 떤다. "화장 진하게 했다고 술집이나 가래요. 학교나 사회나 격리돼야할 사람 취급해요. 도와달라고 하고픈데 아무도 없어요. 나도 잘하고 싶었단 말이에요." 앙다문 입술 끝이 파르르 떨린다.
 
 단 한 명의 정서적 지지자

 경희처럼 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이 어긋나버린 배경과 이유를 설명해줄 한 단어와 한 문장은 없다. 성격이 못돼서라든가 가정교육이 잘못돼서 그렇다는 말은 어른들 편의상 하는 말일 뿐이다.


 교육전문가들은 학교를 그만두는 과정을 '위기시작'과 '위기확대', '위기악화' 세 단계로 파악한다. 학습부진, 가족갈등, 빈곤 등이 위기시작의 일차적 배경이라면, 무관심과 차별, 배타 등은 이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잘하고 싶었다"는 경희의 외침은 칭찬 받고 싶은 단 한사람의 '정서적 지지자'가 필요했다는 절박한 표현에 다름 아니다.


 선효(15)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수련회 날이었다. 다녀오는 길에 반 친구들과 오해가 생겼다. 오해를 푸는 과정에 담임교사가 개입했는데 그 다음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선효는 "담임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이 잘 안 나요"라며 눈물을 글썽인다.


 "초등학교 때부터 날라리로 불렸어요. 그때는 치마를 짧고 좁게 입고 다녀서 그랬나 했죠. 그런데 중학교 들어 담임이 계속 이상한 눈초리로 보기 시작하는 거예요.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 같았어요. 무시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계속 들었죠. 그래서 홧김에 학교 안 다니겠다고 결심했어요."

 "꼭 울게 만들어… 짜증나"
 선효가 가장 힘들 때 힘이 되어 준 것은 아빠였다. 일단 믿어주고 힘이 돼 줬다. 학교 그만두고서 우선 지역의 민간기관에서 처음으로 상담이란 것을 받아봤다. 선효는 "답답하고 억울하고 속상했던 것을 죄다 풀어놓고서 속이 후련했다"며 "아직 진로가 명확하게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학교 그만둔 일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고 말한다.

 


 승희(중3)는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사춘기가 시작됐다. 엄마 말끝에 토시를 달다가 아빠한테 여러 차례 맞았다. 맞으면 방 안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늦은 밤 몰래 빠져 나와 친구 집에서 자고 날이 밝으면 다시 집에 들어가길 반복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담배도 배우고 술도 배웠다. 반항기질은 학교서도 여전해 교사들에게도 대들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폭자위)가 열렸고 그 때마다 상담을 받거나 교내봉사를 나가거나 엄마아빠가 불려왔다.

 


 승희는 학교 상담의 기억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한다. "누구든 무시하면 못 참아요. 늘 무시하거든요. 별것도 아닌데 친구들 앞에서 가방 뒤져요. 나보고 정신과치료가 필요하대요. 저도 치료되면 좋죠. 그런데 학교 상담실 선생님은 엄마아빠 얘기 같은, 아픈 부분만 콕콕 찔러서 끝에 꼭 울게 만들어요. 후련하기는커녕 짜증만 나요."
 
 '낙인찍기'의 악순환
 한번 낙인찍힌 아이들이 그 굴레를 벗어나기란 도통 쉽지 않다. 처음 잘못했을 때 강하게 내쳐진 기억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또 다른 돌출행동을 낳는다. 아이들 스스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을 때에는 정작 SOS를 요청할 따스한 손길을 찾기 힘들다. 한번 낙인은 영원한 낙인이다.


 민순(중3)이는 전과4범이다. 절도, 금품갈취 등이 그 죄목이다. 민순은 자신의 전과에 대해 거리낌 없이 털어놓으며 "그때 참 철이 없었다"고 속없이 웃는다. 시작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방금 출고된 새 차에다가 낙서한 게 들켜 타 지역 학교로 전학 조처됐다. 고급세단에 뭔가 색칠하고픈 찰나의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태에서 낯선 동네, 낯선 학교에 소위 '토스(toss)'됐다. 중학교에서는 말다툼을 벌이다 친구의 얼굴을 때려 적지 않은 합의금을 물어줬다. 민순은 "심하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돈 안주면 고소한다는 말에 아빠엄마가 두 손을 싹싹 빌며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렸다"며 "너무 끔찍해서 기억조차 잘 안 난다"고 말했다.
 
 무기력 은둔형 위기학생

 민순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학교로 전학 조처됐다. "공도 아닌데 이리저리 내던져"지는 사이 민순은 친구들 사이에서 소위 '일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정신 차렸는데 속은 오히려 더 앓고 있어요. 제 편이 없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웬만한 프로그램은 다 받아봤거든요. 그런데 만날 그림 그리고, 검사하고, 상담하다 끝나버려요. 거듭나고 싶은데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민순의 꿈은 작곡가다. 오래전부터 피아노를 쳤다. 친구들이 노래를 곧잘 부른다며 슈퍼스타K에 나가보라고 말할 때는 어깨가 절로 으쓱해진다. 훗날 커서 돈 많이 버는 작곡가가 되면 자신을 '토스'시킨 학교를 방문해 모든 교사에게 스타벅스커피 한 잔씩을 "내던지고 싶다"고 말한다.


 흔들리는 아이들의 징후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잦은 지각과 결석, 성적부진, 가출, 규칙 위반, 폭력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는 바깥으로 표출되는 징후라는 점에서 오히려 즉각적인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부를 수 있다. 문제는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소위 '무기력', '은둔형' 위기학생들이다.

 얌전하고 조용조용한 아이
 해수(4학년)는 3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빠는 새벽 일찍 일 나가셨다가 밤늦게야 돌아오신다. 해수는 학교에서 말이 없고, 수줍음을 많이 탄다. 선생님과 눈도 잘 못 마주친다. 때문에 주변에선 이런 해수를 그냥 얌전하고 조용조용한 아이로 여겼다. "학교 가기 정말 싫다"는 마음이 문득 들었던 어느 날부터 해수는 수업을 빼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교시, 그다음에는 1~3교시, 나중에는 아예 학교를 결석하는 일도 잦았다.

학교 안 가는 날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자 그 후로는 마을 어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학교를 연달아 결석하기 전까지는 담임교사도 아빠도 해수의 이런 마음상태를 잘 몰랐다. 이제 해수는 아빠와 함께 등교한다. 해수를 학교에 바래다주기 위해 아빠는 다니던 일을 관뒀다. 해수는 아빠가 운동장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놓지 않는다. 아빠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찰나 해수는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와 버린다.

 아이는 또 외톨이로 자라겠죠
 몸보다 머리가 웃자라버린 아이들이 짚어내는 미래는 직설적이고 암울하다. 학교와 가정에서 부의 불평등과 대물림을 너무도 일찍 체득해버린 아이들은 입을 모아 "학교 안에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민교(중3)는 이제 며칠만 더 결석하면 학교 유예조치를 당한다. 학교에선 끝까지 붙잡아두려 애쓰지만 졸업장에 대한 마음 속 미련을 버린 지 오래다.민교는 가족 얘기만 나오면 질색한다. "학교 잘 안 다닌다고 가족보고 뭐라 그러는 건 못 참아요"라며 처음부터 가족 관련 질문을 막는다.


 "고교 졸업하면 뭐해요? 대학등록금도 없는데. 어렵게 대학 졸업하면 직장 가질 수 있나요?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학원비 마련한다고 밤늦게까지 맞벌이 하겠죠. 그러면 아이는 또 외톨이가 되겠죠. 그 사이 집은 전세에서 월세로 돌려지고 점점 가난한 동네로 이사 가고…여기는 가난한 사람만 더 가난해지는 곳이라고요."


 너무 일찍 알아버린 세상
 

민교는 두 달 전부터 미용학원에 다닌다. 미용 쪽으로 진로를 택한 이유에 대해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라고 건조하게 답한다. 민교의 꿈은 일찍 기술을 배워, 일찍 직장을 갖고, 일찍 효도하고, 일찍 독립하는 것이다.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단다. 어느 정도 안정되면 가난한 집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겠다고 말한다.
 

 

수민(중3)이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냉소적인 웃음을 흘리며 "개소리"라고 짧게 답한다.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희박하다는 게 덧붙인 이유다. 수민이의 꿈은 예체능 쪽의 다양한 배움과 경험 쌓기이다. 그럼, 체고나 예고를 가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자 "쓸 데 없는 짓"이라고 답한다. "체고나 예고는 한 분야만 배우잖아요. 전 사회, 역사, 미술, 음악, 춤 등을 모두 좋아해요. 이런 공부를 깊게 두루두루 할 수 있는 교육기관은 우리나라에 없어요. 그저 어른들이 정해놓은 진로코드만 있을 뿐이죠. 다 거기에 꿰맞추려 해요."
 
 대학 못 가면 망한 인생?
 수민이는 학교생활에 힘겨워하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마치 대변자라도 된 듯 조목조목 일러준다.
 "수업자체에 흥미를 못 느껴요. 서울 변두리 구로에는 나이든 교사들이 많이 몰려요. 구로동에서 선생 할 맛 안 난다고 하는데 그건 아이들을 다룰 줄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학습지 내용 칠판에 줄줄 쓰면 누가 재미있어 하겠어요? 게임도 하고 퀴즈도 내고 해야죠." 


 입시 위주의 현행교육은 상위 20%의 학생들을 위해 하위 80%의 학생들은 일순 '들러리'로 전락시킨다. 명문대 진학이 지상최대 목표인 현실에서 SKY까지는 안되더라도 수도권 내 대학진학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투자와 관심이 '될성부른 떡잎'에 쏠린다.


 철규(고2)는 학교에서 하위 바닥을 점한 소위 '대학 포기한 아이'로 불린다. 하지만 대학을 포기했다고 절대 인생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꿈은 달라요
 철규는 단지 꿈이 다를 뿐, 세상에 잘못된 꿈은 없다고 말한다. "망한 인생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상담이나 지원은 안 해줘요.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위기학생이라고 하는데 성공의 길이 조금 다를 뿐이죠." 철규의 꿈은 사회복지사다. 짬짬이 지역봉사도 나가고 작은 마을행사에 스텝으로도 참여한다. 길을 찾을 자신이 있고, 자신이 선택한 길이므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진석(고1)이는 지난 여름방학 때 혼자 힘으로 인터넷을 뒤져 정석에 딱 맞는 위탁교육기관을 찾아냈다.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일반계고에 진학했지만 목표가 정해진 이상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었다. 진석이의 꿈은 헤어디자이너다. "3년을 졸랐어요. 진짜 공부에 흥미가 없는데 그걸 설득시키는데 무려 3년이나 걸렸다고요. 다행히 담임이 좋아서 전학시켜줬어요. 여기서 주요과목 배울 때는 졸지만 미용, 메이크업 수업할 때는 절대 안 자요."
 
 좋아서 하는 일 힘들지 않아요
 진석이는 오전 9시부터 3시까지는 위탁기관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 4시부터 밤 9시30분까지는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용돈이 궁해서가 아니라 현장경험을 쌓기 위해서다. 피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요?"라고 반문한다. 졸업 후 바로 현장에 나가 경험을 쌓은 뒤 꼭, 나이 '서른여덟'에 청담동에 진출한다는 다부진 꿈을 갖고 있다. 왜 나이 서른여덟이냐는 물음에 돌아오는 답이 참으로 훈훈하다.


 "중간에 군대 다녀오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서른여덟쯤에 딱 미용실 독립하겠다 싶어서요. 서른여덟이면 결혼해서 아이 한참 클 때잖아요. 남들보다 3~4년 일찍 시작한 덕에 아이 앞에 돈 많이 들어가기 전 가장으로서 안정된 벌이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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