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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에 동의한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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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에 동의한 이유는 …
  • 구로타임즈
  • 승인 2010.02.0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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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32

 어린이집에서 종이가 한 장 날아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공부를 하는데 동의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어떡하지? 동의하지 말까?" 아이 엄마와 상의를 했습니다. 아직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영어까지 가르치는 건 아이들한테 분명히 무리입니다. 게다가 미루보다 한 살 많은 반에서는 영어 쓰기도 가르친다는데 그건 더 부담스럽습니다.


 "'동의하지 않는다.'에 체크해서 보내자." 정말 싫어서 이렇게 얘기했더니 아이 엄마의 말은 다릅니다. "나도 동의 안 했으면 좋겠는데, 영어 안 가르치면 어린이집을 다른 데로 옮긴다잖아." "누가? 다른 부모님들이?" "응"


 생각해보니까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루네 반 아이 하나가 어린이집을 바로 근처로 옮겼는데 그 이유가 아이 공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학교도 안 들어갈 나이 아이들이 무슨 공부 때문인가 싶었지만 부모님들 생각은 저희랑 많이 다르다는 걸 그 때 알았습니다.


 사실 지금 미루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뭘 많이 안 가르친다는 점'에서 다른 곳에 비하면 굉장히 훌륭한 곳입니다. 잘 모르는 부모님들은 이게 선생님들이 자기 편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이집 다닐 시기의 아이들에게 자꾸 뭔가를 주입시키려고 하고 '공부'시키려고 하면 아이들은 힘들기만 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놀이와 체험 같은 것을 통해서 배울 건 다 배웁니다.


 흔히 생각하는 '공부'는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뭘 많이 안 가르치는, 그리고 사실은 다른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제대로 돕는 미루네 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가르치는 어린이집입니다.


 "그래? 어린이집 옮기는 부모가 있으면 어린이집 운영이 잘 안 될 거 아냐." "그렇지, 그러니까 그냥 동의하자." 그래도 동의하지 않는 부모도 있다는 걸 알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우리는 영어공부에 동의하기로 하고 사인을 했습니다.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은 좋은 사교육을 따로 시켜줄 수도 없는 처지에서 어린이집에서라도 아이들을 더 잘 가르쳐주길 바라는 가난한 부모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고, 미루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우연히 갖게 된 식사자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습니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ABCD 알파벳이라도 외우고 들어가야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한테 뒤처지지 않을 거라는 소박한 바람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이제 막 5살 된 아이한테 학습을 강요하는 이 사회의 경쟁지상주의가 짜증스럽습니다. 날씨도 춥고 마음도 춥습니다.

 

 

 

◈ 이 기사는 2010년 1월 25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35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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