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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움까지 느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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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움까지 느낀 1년
  • 송지현
  • 승인 2008.07.10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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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엄마가 살기엔 너무 힘든 동네죠”
■ 주민의 소리 _ 오류2동 주민 박현정씨

오류2동에 살고 있는 박현정(39) 씨에게 이 동네로 이사 와 지낸 지난 일 년은 한마디로 ‘서러움’의 시간이었다.

구로1동에 살다가 남편의 직장보육어린이집이 오류동에 있어 지난해 5월말에 이 동네로 이사 왔다.

6살, 4살짜리 두 아이와 얼마 전 태어난 4개월 된 막둥이, 그리고 남편이 박 씨의 가족이다.

*공공놀이터 하나 없는 동네

그가 가장 먼저 부닥친 문제는 놀이터. 셋째 아이 임신한 몸으로 두 명의 아이와 손잡고 나선 ‘놀이터 찾기’는 동네를 몇 바퀴 돌고나서야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동네에 놀이터가 없을 수가 있죠? 이 동네 아이들은 어디서 논다 말인가요?”
주변에 놀이터가 있기는 했다. 아파트 놀이터가 그것. 그러나 아파트 놀이터는 거주 주민이 아니라면 누구나 눈치 보게 되고,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시끄러우니 나가달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고.

안되겠다는 생각에 찾아간 곳은 오류2동 주민센터. 그러나 박 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가운 답변뿐이었다.

“놀이터는 동사무소 관할업무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구청에 가야 한다길래 갔습니다. 그랬더니 공무원이 놀이터 없는 동네가 오류2동만이 아니라면서 없는 대로 살라는 식으로 대답하던데요.”

예산도 없고, 부지도 없어 어렵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억울하고 기가 막힌 심정이었다.

남편이 하루는 아이들 데리고 동네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한다는 소리가 “서민의 서러움을 알겠다”는 말. 어쩜 이런 동네가 있냐며 같이 분통을 터트렸다.

박 씨를 더 화나게 한 것은 얼마 전 서울시에서 발표한 정책인 ‘노후 놀이터 교체 사업.’

“낡은 시설 교체한다니 좋은 일이죠. 근데 놀이터 없는 곳부터 살피는 게 먼저 아닙니까? 정말 세금 아깝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니까요.”

*엘리베이터 없는 오류역 계단
*장애인리프트도 잦은 ‘고장’

그가 부닥친 두 번째 문제는 오류동역. 지난 겨울, 배는 점점 불러오고 있던 때였다. 큰아이 다니는 어린이집이 박 씨가 사는 집에서 오류동역 반대편에 있는지라 박 씨는 둘째 아이와 함께 오류동역 계단을 하루에도 두 번씩은 어김없이 오르락내리락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자전거를 좋아하는 둘째 아이 때문에 외출할 때 자전거를 꼭 가지고 나서게 되는데, 문제는 오류동역에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는 없고 장애인용 리프트만 있다는 점.

“임신한 몸으로 둘째 아이는 업고, 한손에는 자전거 잡고 한손에는 큰아이 손잡고 나선 길이 어땠을까 생각해보셨나요? 눈 많이 온다고, 비 온다고 애 데리러 안 가나요?”

이런 상황에서 박 씨가 종종 이용하는 것은 장애인용 리프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이들과 높은 계단을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아 장애인용 리프트에 몸을 싣는데, 이 역시 만만치 않다고.

안전장치도 제대로 없는 리프트에 어린 두 아들을 태우고 불안한 자세로 앉아 계단을 오르는 박 씨. 그나마 이것도 종종 실랑이가 붙는다.

“장애인도 아닌데, 왜 장애인용 리프트 타냐고 공익요원이 와서 막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계단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자, ‘그럼 이용하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어요.”

그는 장애인용이라고 꼭 장애인만 타는 것보다는 노인이나 임산부도 탈 수 있는 시설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름도 바꾸는 게 맞지 않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 리프트라도 이용할 수 있는 날은 사정이 훨씬 좋은 날이라고 그는 말했다. 잦은 고장에 이용하지 못하는 날이 훨씬 많다는 것.

하루는 폭설이 내려 보통 사람도 걷기 힘든 길을 나섰는데, 리프트가 고장 난 걸 안 순간 눈물이 쏟아지면서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고.

“이제 4개월된 셋째 아이까지 데리고 나선 길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몰라요.”

박 씨는 오류2동이 오래된 곳인 만큼 어르신도 많은 동네로 알고 있는데, 이 어르신들이 오류동역 계단이 얼마나 힘들겠냐며 노인, 어린이, 임산부가 살기 힘든 동네는 발전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빨리 떠나고 싶어요”

얼마전 국회의원 선거때 오류2동 놀이터와 오류동역사 엘리베이터 설치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를 무조건 찍겠다고 박 씨 부부는 결심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온 어느 후보 진영에 공약을 물었더니 당연히 있다고 했다고 했단다. 하지만 박씨는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언제 일이 성사되겠어요. 빨리 이 동네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라니까요.”

‘살기 좋은 구로’에서 상처 받은 한 주민은 ‘살기 싫은 구로’로 생각을 바꾸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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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화 2008-07-16 14:59:50
가족 산책 공간 근린공원-노약자(장애인,임산부)위한 엘리베이터시설-
설치 필요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

오은주 2008-07-16 12:33:14
기사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돕니다..
저도 두아이 엄마로서 지하철 이용하면서 불편함을 자주 느꼈어요.
특히 계단 진짜 엄창난 계단.
아이 데리고 다니는 엄마만 알죠.이 맘..

저도 구로1동에 사는데 구일역 안(서울역방향)에도 엘리베이터가 없죠.
한번씩 지하철 이용하려고 해도 겁이 났니다.
노인 임산부 유아들을 위해서 빨리 엘리베이터 만들어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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