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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7주년]“변모하는 구로에 가슴 뿌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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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7주년]“변모하는 구로에 가슴 뿌듯 ”
  • 구로타임즈
  • 승인 2007.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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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7주년특집] 구로구 역대 구청장 13인의 어제와 오늘
지난 1980년 4월 1일 영등포구에서 분리 신설된 구로구는 올해로 개청 27주년을 맞는다.
분구 당시만 해도 공업지역과 농촌지역이 혼재된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 불과했던 구로구는 각종 개발사업과 기반시설 유치 등으로 현재 서남권 중심 도시로의 발전을 일구고 있다.

돈 벌어서 떠나는 도시가 아닌, 이사 와서 살고 싶은 도시로 구로구의 면모가 일신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구로구 행정 수장의 마인드와 역할은 중요해지고 있다. 자치단체 장의 정책방향에 따라 도시의 경쟁력과 주민 삶의 질 향상 여부가 결정될 것이기에 그렇다.

이에 구로타임즈는 창간 7주년을 맞아 구로구의 발전을 진두지휘해온 역대 구청장들의 인터뷰를 통해 구로구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구로구에 대한 식지 않은 관심과 애정을 과시하는 역대 구청장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오늘날 구로구 발전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편집자 주>

지난 1980년 영등포구에서 구로구로 분구된 이후 지난 27년 동안 구로구청장을 역임한 인물은 모두 14명. 정부가 임명하던 관선 구청장으로 재직했던 인물은 김진욱 전 청장 등 12명이며,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민선구청장으로 양대웅 현 청장(민선 3~4기)과 박원철 전 청장(민선 1~2기) 등 2명이 있다.

관선시절 서울시 간부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보직으로 통하기도 했던 임명직 구청장은 지난 1995년 제1기 민선 구청장 선거 이후 주민들의 투표에 의한 선출직 구청장으로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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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선구청장 12명․ 민선구청장 2명등 총14명...일부 연락두절
- 교수 변호사 단체장 국회의원 여가생활 등 활발한 활동

1대부터 12대까지 역대 관선 구청장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약 1년3개월이다. 관선체제의 최단명 구청장은 불과 97일의 신현석 청장(3대)이며, 최장수 구청장은 6대 김진호 청장으로, 2년9개월(85년 9월23일~88년 5월11일)을 재직했다.

역대 관선 구청장들은 서울시우회 모임 등을 통해 교류를 이어가고 있으며, 박형석 청장(10대)과 강성환 청장(11대), 전찬명(12대) 청장은 모두 양천구 목동에 거주하는 관계로 평소에도 자주 모임을 가지며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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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대 김진욱 청장 (80년 4월1일~81년 9월10일)

‘구로구 개청 역사의 산증인’

지난 1979년 10월 구로구청 준비요원으로 발령받은 이래 시흥본동에 위치한 5층짜리 임시청사 시절부터 구로구와 함께 했던 김진욱 청장(73)은 구로구 개청 역사의 산증인이다.
김 청장은 구로구 개청을 준비할 당시의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구로구 청사를 지을 때 정상천 서울시장에게 말해서 경찰서 부지까지 확보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구로구청과 경찰서 사이에 위치한 작은 건물에 보건소를 앉혔죠. 그때만 해도 청기와 지붕이 드물었는데 한국 고전미를 살려야한다고 주장해서 지붕에다 청기와를 올리기도 했죠.”

김 청장이 기억하는 개청 직후의 구로지역은 한마디로 “정말 엉망”이었다. 서울시 변두리의 낙후된 지역으로 각종 기반시설이 열악했던 구로구에서 김 청장이 팔 걷어 부치고 매진했던 사업은 바로 도로 포장 공사와 하수도 공사였다. 크고 작은 공사를 진행하다보니 지역 주민들과의 의사소통은 필수였다.

때문에 당시 주민들과의 징검다리 역할을 자청했던 구로지역 인사들의 이름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술술 외어질 정도다. “구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준 그들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구청 자문위원장인 김창학씨, 시흥동에 사는 평복장씨, 농협중앙회의 박준식씨 등 주민과의 모임을 앞장서서 주선해준 분들은 지금도 잊지 못하죠.”

1대 청장은 오늘의 구로의 변화에 대해 어떤 감회를 가질까.
김 청장은 두 달 전 직접 차를 몰고 구로구를 돌아본 최근의 기억을 떠올리며 “참 많이도 변했다”라고 말문을 텄다. “재직 시절 구획정리가 한창이던 개봉동과 고척동이 눈에 띄게 좋아졌더군요. 구로공단 또한 지금은 IT산업단지로 변모했습니다. 이제는 살기 좋은 구로구가 된 것 같아 가슴 뿌듯합니다.”

김 청장은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김 청장은 “주민이 잘 협력해서 구청, 구의회, 경찰서 등과 협조하면 서울시 다른 지역 못지않게 발전할 것”이라며 “어제보다는 분명 나아지는 구로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로구청 재직 이후 세종문화회관 관장과 서울시도시개발공사 사장(현 SH공사) 등을 역임한 김 청장은 지금은 용인시 성복동에 거주하며, 공직생활 때 인연을 맺었던 인사들과 각종 모임과 산행 등을 즐기며 지낸다고 최근의 근황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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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이광하 청장 (81년 9월11일~82년 9월9일)

“멀리서나마 구로발전 응원할 터”

2대 이광하(74) 청장은 재임 기간 ‘주민들의 화합’이 구로발전의 제1의 관건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도심 공단지구인 구로지구와 신흥 개발지구인 시흥지구 그리고 농촌지역인 오류지구 등 3개 지구로 나눠졌던 구로구는 거주지 특성별로 주민 성향이 제각각이었던 이유로 지역발전에 대한 주민들의 각기 다른 요구를 받아 안아 구정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우선과제였다.

“당시 구로구는 시흥지구와 구로지구, 오류지구 등 3개 지구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지역마다 주민들의 성향 분포가 각기 달랐습니다. 대부분 영세지역이라 개발에 대한 욕구는 높았지만 농촌지역과 공단지역 주민들의 생각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구청장으로 일했던 1년 동안 주민들 간의 화합과 통합을 이뤄 구로발전을 하나의 밑그림으로 가져가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서울시도시개발공사(SH공사) 초대 사장 등을 역임하고 지난 1996년 공식 활동을 접은 이래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서 집필과 학술 활동 등에 매진하고 있는 이 청장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접한 구로구 변화의 면면에 대해 “주민들이 노력을 많이 한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평했다.

이 청장은 “언론보도를 통해 디지털산업단지의 변화와 가리봉 일대 개발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주민들이 크게 합심해서 노력을 많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앞으로도 멀리서나마 구로구의 발전을 응원 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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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박종우 청장(88년 5월12일~89년 11월17일)

인천시장 거쳐 국회의원 역임

구로구청장 재직 이후 인천시 시장 등을 거쳐 15대, 16대 국회의원(경기도 김포)을 역임한 박종우(69) 청장은 의원시절 구로구 주민들이 국회를 방문해 민원을 제기했던 기억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의원 활동을 할 때 구로동 주민들이 찾아와서 재개발을 하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행정으로는 해결이 안 되니 국회의 힘을 빌리려고 했던 거죠. 주민들이 여러 번 찾아왔기에 의원으로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는데 제 손에서는 해결이 안됐어요. 그 일이 훗날 제대로 해결됐는지 지금도 몹시 궁금합니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정계를 은퇴하고, 후진 양성과 건강관리에 힘쓰고 있는 박 청장은 구청장 재임 기간을 되돌아보면 2~3평짜리 판잣집들이 빼곡히 늘어섰던 구로3동 일대의 풍경이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친다고 말한다.

“공중목욕탕도 없고, 화장실도 변변치 않았던 지역이 바로 구로3동이었습니다. 이주단지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보니 주민편의시설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생활시설도 마련돼 있지 않았죠. 짧은 재직 기간에 청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그 지역에 주민들을 위한 사회복지관을 건립한 게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청장은 후배 공무원들에 대한 당부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재직 당시 함께 일했던 양대웅 청장 외에는 저를 기억하는 공무원들이 없겠지만 선배로서 이말 만은 해주고 싶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주민이 많은 구로구에서 주민들 복지 향상을 위해 많은 후배 공무원이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예전에는 구로구 하면 많은 이가 벌집과 판잣집을 떠올리는 등 구로구에 산다는 것을 불명예스럽게 여겼습니다. 이제는 구로구 주민들이 행복해질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나 싶은데, 관계 공무원들이 좀 더 주민들의 삶을 세심하게 살펴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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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대 김치운 청장(92년 4월27일~93년 3월17일)

“ 지역 잠재요소를 발전동력원으로”

지난 1998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을 끝으로 37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7년째 계명대학교(대구)에서 행정학과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김치운(69) 청장은 구로구 발전의 기본 동력이 “토박이 주민들의 지역 사랑”에 있다고 전했다.

“구로구의 저력은 지역을 사랑하고 아끼는 토박이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반면 근래 들어 고향을 사랑하는 의식이 약해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하는 주민이 늘어난다는 점은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죠. 이러한 때 구로구는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정하고 책임성 있게 지역 특성에 기반한 독자적인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청장은 구로구 발전 방안의 하나로 구로디지털산업단지가 가진 무궁한 자원들을 구 정책에 조화롭게 접목시킬 것을 주문하고 나섰다.

“디지털산업단지에는 유능한 인적자원과 기술, 기업들이 존재합니다. 이들 자원이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 구로구의 발전 또한 앞당길 수 있죠. 일례로 구로구 소재의 학교와 디지털산업단지의 기업들을 연결하는 산학발전 시스템을 도입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구로관내에는 조선족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를 감안해 외국인 노동자 마을을 구상할 수도 있죠. 이처럼 구로구는 차별화된 행정을 펼칠 수 있는 많은 잠재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김 청장은 1년 남짓한 구청장 재임 기간 동안 기억에 남는 일로, KBS와 공동으로 개최한 음악회와 책 읽기 운동, 가로공원 조성, 안양천변 고수부지 정리사업 등을 손꼽았다. 김 청장은 현재 대학 강단 활동과 함께 국제 구호단체인 (사)인터내셔널 에이드 코리아의 대표직을 맡아 국내외 빈민 구호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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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대 박형석 청장(93년 3월18일~93년 9월27일)

“구로역사 위 전자상가
구축안 무산 아쉬워”

다른 역대 청장들에 비해 재임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던 박형석 청장(71)은 “구로구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계획들이 많았는데 일할 시간이 짧아 끝맺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먼저 전했다.

박 청장은 “구로역을 교통 요충지로, 역사 위로는 전자상가를 구축하고, 지하에는 다양한 지하철 노선을 지나게 하는 등 구로를 서울의 중심축으로 만드는 기획안에 대해 이원종 서울시장과 기아산업 측과 긍정적인 얘기까지 오갔었는데 갑자기 서울시 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계획이 무산됐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박 청장은 구로지역의 비 피해에 대한 남다른 기억도 갖고 있다. 박 청장은 “재직 당시 개봉동에 수해가 심각해서 근무하자마자 개화천변에 하수 벽을 쌓고, 구로 유수지에 모터를 8대 증설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다행히 이후에는 수해 피해가 줄어들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우드볼협회 회장직을 맡아 노년층의 건강한 삶을 위한 우드볼(게이트볼류) 확산에 힘쓰고 있다는 박 청장은 구로구와 가까운 양천구 목동에 거주하는 까닭에 구로구를 자주 드나든다며 구로구 변화에 대한 단상을 이렇게 전했다.

“가깝다보니 구로구의 변화를 관심 갖고 지켜보게 되는데 구로구는 10년 전과 비교해 변하기는 많이 변했지만 다른 구에 비해 발전의 속도는 더딘 것 같습니다. 구로구 발전의 열쇠는 주민들이 쥐고 있는 만큼 내가 이곳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수준 높은 자치 시민의 힘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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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발전위한 역대 구로구청장들의 제언 ․ 당부 한마디

“ 지역특성에 기반한 독자적 행정 펼쳐야”
“ 놀라운 변화 ...이제 도로 교통망이 관건”
“ 구로발전 열쇠는 수준 높은 주민자치의식”
“ 주민 삶 더욱 세심히 살피는 공무원으로 ”
“ 박력 있는 구로발전위해 주민 힘 모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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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대 전찬명 청장(94년 12월7일~95년 6월30일)

관선시절 마지막 청장
‘금천구 분구 진두지휘

관선체제 마지막 임명 구청장이자, 95년 금천구 분구를 진두지휘했던 전찬명(69) 청장의 재임 기간은 한마디로 ‘다사다난’했다.

전 청장은 부임 이틀 만에 500명의 민원인이 구청사에 몰려온 일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전 청장은 “재건축 사업자가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구로본동 동진주택 집단 민원인 500명이 해결해달라며 구청을 방문한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당시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보증회사를 다그쳐 사업을 완료시킨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금천구 분구와 민선체제 전환기에 얽힌 사연들도 적잖다. 금천구 독립청사를 들일만한 공간이 없어 건물 4채를 임대해 부서별로 사무실을 따로 앉힌 일이나, 지역 국회의원으로부터 금천구의 민선 구청장 출마를 제안 받고서 거절한 일 등이 그것이다.

“정당정치에 뜻을 둔다면 국회의원을 해야지, 구청장은 정당공천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당공천을 받게 되면 구청장은 정치인도, 행정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놓이게 되죠. 민선 구청장의 정당공천제에 대한 반대 입장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구로구의 변화 모습에 대해 전 청장은 “상전벽해를 이뤘다”라는 말로 요약했다.

“구로디지털산업단지의 변화된 모습이나, 신도림역 일대에 높아가고 있는 빌딩들을 목격하며 앞으로 구로구가 서남권의 중심지로 도약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자연스레 갖게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구로구가 서울 서남부의 관문임에도 불구하고 교통이 여전히 불편하다는 겁니다. 구로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구로구의 중심을 관통하는 중심 도로망의 구축이 필요합니다.”

전 청장은 현재 구정을 책임지고 있는 구청 공무원들에 대한 당부의 말도 함께 전했다.
“공직에 있을 때는 공익이 사익에 우선되게 해야 합니다. 공무원의 제1의 덕목은 바로 봉사입니다. 봉사의 덕목을 늘 마음에 새기고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공무원으로 정년을 마감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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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선 제1~2대 박원철 청장(95년 7월1일~02년 6월)

민선의 힘은 “주민 맞춤 행정”

구로구 1~2대 민선 구청장을 역임한 박원철(74) 청장은 민선체제의 장점이 “주민중심의 책임행정 구현”에 있다고 전했다. 박 청장은 “민선 자치는 중앙정부에 눈치 볼 것 없이 주민 속으로 들어가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맞춤행정을 펼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구로구 공무원들은 주민들이 좋다고 말해야 진정 좋은 공무원이라는 생각으로 구로구 주민을 위해 힘껏 봉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청장은 재임 6년 동안 광명시와의 윈-윈 전략을 통해 쓰레기소각장 시설을 광역화한 일과 구유재산 5천700평을 되찾은 일 등을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꼽았다. 반면 임기 말기에 제기된 구로2․3․4동의 변상금 관련 민원은 자치단체 장으로서 가장 곤욕스러웠던 일이라고 소회했다.

박 청장은 지난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이후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 법률사무실을 개업하고, 변호사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한편 구로구 주민들 대상으로 무료 법률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구로구 주민들의 방문은 요즘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청장과 주민으로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여겨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싶어 법률 도우미를 자청했죠. 주례요청도 적잖게 들어와 요즘은 주례 때문에라도 구로구를 자주 찾게 됩니다.”

초대 민선 구청장을 맡아 구로구 생활자치의 초석을 다지며 주민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구로구에 정이 담뿍 들어버렸다는 박 청장은 끝으로 자신을 기억하는 주민들에게 전해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구로구는 민주투쟁의 장이자 한국 산업사회의 전진기지로서 충분히 자긍심을 느낄만한 지역입니다. 개개인의 이기심을 뛰어 넘어 구로발전이 좀 더 박력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주민 모두의 힘이 모아지길 기대합니다.”
[ 송희정 ․ 김윤영 ․ 윤용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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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구청장 인터뷰 뒷이야기]


“청장님, 연락할 길이 없어요”

구로구청 역대 구청장들의 인터뷰를 가능하게 해준 일등공신은 서울시 3급 이상의 전직 고위공직자들의 친목모임인 ‘서울시 시우회’이다.

역대 구청장들의 연락처는 모두 시우회의 협조로 파악할 수 있었으며, 이곳과 연결되기 전까지는 구로구청을 비롯한 역대 구청장이 재직했던 기관 등을 수소문해가며 턱없이 부족한 정보에 마음 졸여야 했다. 구로구청을 비롯한 서울시내 대부분 자치단체에서는 역대 관선 구청장들의 근황에 대한 별도의 기록을 관리하고 있지 않았다.

어렵게 연락처를 알아냈지만 주소지 변경으로 인터뷰 섭외에 실패한 청장들도 적잖다.

일부청장들 연락두절
건강상 인터뷰사절도

3대 신현석 청장과 4대 허재구 청장 그리고 5대 심계섭 청장은 백방으로 수소문 했지만 끝내 연락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일부 청장들에 따르면 신 청장과 허 청장, 심 청장은 시우회 모임에도 두문분출하며, 회원들 사이에서도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았더라도 청장들과의 면담 인터뷰는 쉽게 성사되지 못했다. 9대 김치운 청장과 10대 박형석 청장, 민선 1~2대 박원철 청장을 제외한 이들은 해외 방문과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대부문 전화 인터뷰를 선호했다.

6대 김진호 청장은 최근 신장 수술을 받고 건강이 악화돼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서 요양 중이라며 오랜 대화가 힘들어 인터뷰를 거절한다는 뜻을 밝혔다.

8대 이광우 청장은 여러 번의 전화연락 끝에 지난 13일 오전 11시쯤 가까스로 연결이 됐지만 “오래된 일이라 특별히 말씀 드릴 건 없지만 구로소식은 자주 듣고 있다. 구로구는 다른 구에 비해서 애향심도 높고 정감 넘치는 그런 지역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갈음했다.

11대 강성환 청장은 두 차례에 걸친 섭외 과정에서 “흘러간 사람들은 할 얘기가 그리 많지 않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강 청장은 마지막 통화에서 “구로구 주민들에 대한 애정도 식지 않았고, 구로구를 사랑하는 마음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며 “주민 모두 건강하게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기원한다”고 간단한 인사말을 남겼다.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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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구 역대 구청장
역대구 청 장 재 임 기 간
관선 구청장 제 1대 김 진욱 1980. 4. 1~ 1981. 9. 10
제 2대 이 광하 1981. 9. 11~ 1982. 9. 9
제 3대 신 현석 1982 9. 10~ 1982. 12.15
제 4대 허 재구 1982. 12. 16~ 1984. 1 .13
제 5대 심 계섭 1984. 1. 14~ 1985. 9.22
제 6대 김 진호 1985. 9.23~1988. 5.11
제 7대 박 종우 1988. 5. 12~1989. 11. 17
제 8대 이 광우 1989. 11.8~1992. 4. 26
제 9대 김 치운 1992. 4. 27 ~1993. 3. 17
제10대 박 형석 1993. 3. 18~1993. 9. 27
제11대 강 성환 1993. 9.28~1994. 12. 6
제12대 전 찬명 1994. 12.7~1995. 6. 30

민선 구청장 제1대 제2대 박 원철 1995. 7.1 ~ 2002. 6. 30
제3대 제4대 양 대웅 2002. 7.1 ~ 현재
자료: 九老區誌 (구로구청발행,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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