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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백두산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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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백두산 연가
  • 이은심
  • 승인 2006.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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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연가


글쓴이 : 이은심



1.
보다 가까워진 흰 가슴,
사상의 검열을 헤치고
우리는 기인 옷고름 흰 끈 빛으로 흘렀다

밤새 비바람 퍼부어
오천년 묵은 더깨 씻어내고
대황의 텃밭에 말씀의 종자를 뿌리었던가

죽은 자작나무숲
뿌연 세월의 연무 헤치고
일어선 장군, 거짓된 기록을 깨니

맨지럽게
얼음 빛 하늘 부비는 산영이다

후두둑 지는 눈물방울은
분질러진 고사목 사이
꿈결같은 향분을 날리우고...

2.

내가 당신의 몸 안에 있으니
당신을 전부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의 짙은 눈섭을 보고
소천지에 투명히도 어리우는
푸르른 자작나무숲을 알고

당신의 얇은 입술을 보고
달문 아래 통천하 흘러나린
흰물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신의 깊고 깊은 눈동자 속을
단군고기 물음처럼 걷고 또 걸어

거대한 獸身을 흔들어대던 대륙과
동북의 정수리 치고 올라오던
시뻘건 불기둥을 보았습니다

움푹 패인 큰 구덩이 속
수정같이 알알한 수면에 이르르니
백두산 신령님!
백호곁에 웃고 서계시었습니다

달문 아래
흰 사다리 걸어놓고
무서운 굉음을 울리던 장백폭포,

천지를 에워싸던 냉연을
가르고 나타난 성스러운 바위들이
청산리대첩 ! 만주들판 떨게 하던
김좌진장군의 호령에 놀란 듯이 우뚝 일어서서

선조 앞에 벌 선 듯이
두 팔을 힘겹게 들고있던 조선의 높푸른 하늘을
나의 무릎 앞으로 고이 내려 주었습니다

3.

백두산 기슭은
세월의 바람에 씻기고, 씻기어
자작나무 하얀 손들을 남기었습니다

알푸른 천짓물이
원시로 고여있다 못해 통천하 목젖을 따라
장백폭포로 폭음내며 흰돌처럼 굴러 떨어질 때

백두산 신령님의
하얀 수염이 나붓끼고 또 나붓끼어
대황의 어둠을 씻고 또 씻어줍니다

지금도 소천지에 홀로 남아
쭉 뻗은 미인송을 그리는 북한화가의 손이
샤만의 사시낢 가지처럼 떨고 있으니

조선의 아름다움이여!
못 참을 나날의 주림에 부황 든 이에도
신명을 나리시어 압록, 송화, 두만을 따라 흐르게 하소서

4.

무릎 꿇고 애원합니다

당신의 혼이
한반도 통일 되는 순간 까지
내 곁에서 떠나가지 않길...

둘이 하나 되는 그 날은
이 몸이 스러지고 없어도
여한이 없으리니

백두산
느리게 흘러나린 기슭에
열병한 붉은 미인송의 쭉 뻗오른 키

날렵한 가지 끝에
푸르게 서리인 조선의 하늘이여

아픔으로 갈라진 천지
툭 터진 통천하
수직의 비단 폭 걸고

죽은 자작나무 목령이 비치어
귀기 어린 소천지 가으로
지금도 끓고 있는 장백온천의 열도여

5.

내면의 폭풍을 이고 앉아
이마에 굵은 주름을 짓는
백두산 호랑이

미끈둥한 굵은 허리를 따라
흠흠한 빛의 강물이 흘러
한 오라기 털끝마다 금빛이었다

생식의 선을 타고 흐르는
삼현의 풍류에
꿈틀대는 고풍한 얼룩무늬

덜렁거리는 무거운 범꼬리에 얻어 맞아
조각난 흰 바위들이
맞선 어깨 들부비면

활활 타오르는 화등잔 눈알은
타다 만 화산의
땅속 거울일터지

하얗게 서리 인 장백산의 터진 옆구리
쩍 갈라진 허연 암봉 사이
드러나는 성스러운 숲,

지금도 화산활동
그 시절을 그리며
폭딱 폭딱 끓는 뜨거운 온천수 가으로

아직 녹지 않은 눈 위에
몰아치는 눈보라을 뚫고
오한에 떠는 자작나무 찬물방울 틈새 꿰뚫는 형안.

6.

장백산
느리게 흘러내린 기슭
자작나무 죽은 가지 사이
청산리 대첩의 원혼들이 거닐고 있구나

햇살이 쨍한 날이면
드러나는 고사목의 흰 뿌리 아래
민들레 풀씨처럼 점점이 몸을 흩었다가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면
들어 올리는 창 밖에서
사납게 아우성 치는 저 소리

유리창을 때리는 빗방울 마다
조선독립투사의 넋을 잊지 않고
무거운 납빛 조종소리를 울리고

그런 날이면
창백하게 질린 미인송 너머
어디론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백두산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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