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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6]개봉3동 도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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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6]개봉3동 도당제
  • 김윤영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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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 살리기 위해 400년 된 느티나무에 고사

옛날 옛날 개웅산 아래 있었다고 해서 개웅마을(현 개봉3동)이라고 불리던 시절. 이 마을에는 창녕 조씨인 선조 한 분이 심었다는, 나이가 400살이나 된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 나무를 둘러싼 다양한 설화가 개웅마을, 즉 오늘날 개봉3동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 개웅마을에서는 갓난아이를 비롯해 어린이, 청년등 마을 사람들이 많이 죽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창녕조씨 후손인 조상익이라는 사람의 모친 꿈에 수염이 하얀 도사가 나타나 “다시마를 튀겨서 산고사를 지내라”는 말을 했다고.

그 후 마을 사람들이 양곡을 모아 고사를 지내면서 동네사람이 죽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 것이 개봉동 도당제의 시초다.

개봉동 도당제와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광복이 되던 1945년에 느티나무 옆에 있던 가죽나무가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도당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고사를 다른 나무에서 지냈다”고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또 이 나무 앞으로는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없었는데 결혼식을 마친 신랑과 신부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신랑이 탄 말의 다리가 땅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현재 그곳에는 전설의 주인공이던 느티나무는 간데 없고, 소막골어린이공원으로 바뀌어져 있다. 이제 나무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과 ‘느티나무길’이라는 도로명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10월 초사흗날 산신께 빌고 이 느티나무 앞에서 고사 지내던 옛 개봉동 도당제도 나무가 없어지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간소화돼 지금은 인근 절에서 산신제만 지내고 있다.

개봉3동 토박이라는 8통 통장 권종수(54)씨는 10여 년 전 나무가 없어졌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 나무는 산 중턱쯤에 있었는데 20여 년 전 산을 깎아 평편하게 조성되면서 1/3이 묻혔는데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10여 년 전에 구청에서 베어가고 지금은 흔적도 없다고. 당시 국가에서 하는 일이어서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권씨는 “장정 셋이 앉을 정도에 나무 둥치에서 50m 떨어진 곳에 그네를 매달아서 놀 정도로 큰 나무였다”고 회상했다. 또 어린아이 1명이 들어가 놀 정도로 큰 나무 구멍이 있었는데 밤에는 ‘우~’하는 소리도 나 나무에 사는 구렁이가 우는 소리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한다.

동네에서 워낙 신성시해 장가를 가거나 시집을 오면 꼭 인사를 하고 지나가던 곳이었다고.

인간의 작은 이기심이 몇 백 년을 이어온 나무를 아니 개봉동의 옛 이야기를 묻어버렸다. 특히 구로엔 갖가지 개발로 향토사를 잃어버린 곳이 많다. 흔적은 없지만 이렇게 몇 줄로 나마 기억되길 바란다.

❚도움말 : 개봉3동 8통 통장 권종수(54)씨
❚참고서적 : 향토사수탄(김정진 편저,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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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4.24일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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