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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학교급식조례 핵심쟁점과 무산 속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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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학교급식조례 핵심쟁점과 무산 속뜻은
  • 송희정
  • 승인 2006.03.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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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단체 “아이 밥상에 정치논리 들이대”
- 구 로 구 청 “급식법 안되니 억지 조례 제정”


구로구 주민 1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발의 된 학교급식지원조례가 구청과 구의회의 반대에 부닥쳐 3년을 질질 끌어온 끝에 지난 17일 구의회 임시회를 끝으로 자동 폐기됐다.

지난주 이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내 아이에게 좋은 밥 먹이겠다는 뜻 깊은 시도가 뭣 때문에 찬반양론 팽팽하게 맞붙고 결국 무산에까지 이르렀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을 법하다.

단순히 보면, 학교급식구로구운동본부(대표 배옥병, 이하 운동본부)의 “아이가 학교에서 질 좋은 밥을 먹는 데 구청이 나서서 예산을 지원해라”라는 주장과 구청의 “관련 규정도 없고 예산도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봐라”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것인데, 사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양측의 시각과 입장 차이에 따라 얽히고설킨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가 옳은 일을 했고, 그런 일을 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그동안 조례 제정을 놓고 첨예하게 맞붙은 주요 쟁점들을 다뤄볼까 한다.


우리농산물 표기 논란
주민발의 된 학교급식지원조례 내용에는 급식 식재료를 ‘우리 농․수․축산물’로 사용함을 명시하고 있다. 학생의 건강한 신체발달을 돕고 또 잇따른 외국 농산물 개방으로 실의에 빠진 농촌과 농업도 살려보자는 게 운동본부측의 도입 취지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구청은 WTO 농업협정(외국산 차별금지) 위배를 들어 ‘우리’라는 말 대신 ‘우수한’이라는 용어를 쓸 것을 주장하고 있다. 구청 기획예산과 윤재락 과장은 “현재 서울시도 이 문제로 행자부에 소송을 제기해 계류 상태”라며 “‘우수한’이라고 표기해놓고 실제로 식재료를 살 때는 우리 농산물을 구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WTO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 운동본부측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운동본부 고영국 사무국장은 “국무조정실에서 나온 문서에 따르면 구청의 식재료 조달행위는 WTO 협정대상이 아니기에, 구 조례에 우리 농․수․축산물을 명시하는 것은 하등의 문제될 이유가 없다”며 “광역단체를 규제하는 내용을 갖고 반대 논리를 펴는 구청측 주장은 한마디로 웃기는 것이다”고 전했다.


직영급식 지원 문제
직영급식 지원 논란은 이것과는 좀 다른 양상이다. 구청측은 오히려 직영급식과 위탁급식 모두 지원해주자는 주장이고, 운동본부측은 직영에만 지원해주자는 주장이다. 현재 구로관내 현황을 보면, 초등학교는 모두 직영급식을 실시하고 있고, 중․고등학교는 거의 대부분 학교에서 위탁급식을 하고 있다.

윤재락 과장은 “직영보다는 돈 못내는 아이들이 많은 중․고 위탁시설에 대한 지원이 더 절실한 거 아니냐”며 “위탁을 직영으로 돌리자는 게 그들의 주장이지만 사실 이는 교육부나 학교장의 소관 사항이며, 사실 위탁업체에서 식재료를 대량 구매하면 단가가 떨어져 더 경제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운동본부는 업자가 영업 이익을 챙기는 시스템인 위탁급식까지 지원하자는 구청측 주장에 대해 공공성보다는 시장논리를 우선시하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고영국 사무국장은 “직영은 국가 시책이면서 아이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바라는 학부모 대다수의 바람이기에 향후 위탁급식은 직영급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예산이 많이 들어 힘들다는 구청이 위탁과 직영을 모두 지원해주자는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조례 제정에 따른 예산 규모를 부풀려 조례 제정을 사전에 차단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재원 조달 방안 논란
학교급식지원조례를 놓고 가장 널리 알려진 논란은 바로 재원 조달의 문제다. 하지만 이 쟁점은 단순히 예산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구청 지원 예산을 계산하는 기준 및 방식과 단계별 예산 투입 방안 그리고 재원조달 방법에 대한 원칙과 시각차이의 문제라고 보는 게 옳다.

조례가 실시됐을 때 구청이 추정한 총 지원예산은 대략 70-80억원 규모다. 반면 운동본부측이 내놓은 전체 소요 예산은 45억 원 규모로, 상위법 지원 근거 마련과 구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시행 1년차에는 4-5억 원, 2년차에는 10억 원 등 단계별로 투입하자는 주장이다.

고영국 사무국장은 “구청이 내놓은 예산 안에는 위탁업체에 지원하는 예산이 포함돼 있는 등 계산 방식과 기준이 운동본부와는 매우 다르다”며 “구 자체 예산으로 한 해 70억 원을 부담하라는 건 우리가 보이에도 무리한 요구이며 이는 단계별 지원책을 마련해 향후 국비와 시비를 늘려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토론과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구청측 태도로 한 번도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 국장은 이어 “결국 예산의 문제는 구청장 의지의 문제이며, 또한 구청장의 의지가 발동하지 않는 이유는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에 기득권을 넘겨주지 않으면서 향후 행정자치부의 지침으로 급식지원조례를 통과시킬 때 자치단체의 급식지원을 구청장 치적으로 갖고 가기 위한 명백한 정치논리가 깔려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윤재락 과장은 “학교급식은 주민발의의 문제가 아니라 조례 내용이 상위법상 맞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며 “운동본부의 제안사항은 지금껏 모두 공문으로 답해 줬으며, 구청이 주장하는 쟁점 사항만 해결된다면 우리는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운동본부는 지난 21일 학교급식지원조례 무산에 대한 대책회의를 갖고 향후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운동본부는 양대웅 구로구청장과 한나라당 구의원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학교급식지원조례를 주민발의로 다시 추진할 것을 결의했다.

shj@kuro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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