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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서 나온 허인아씨, 33년 만에 '세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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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서 나온 허인아씨, 33년 만에 '세상 속으로'
  • 성진아 시민기자
  • 승인 2016.08.29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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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으로 누워 살다 시설서 나온 허인아씨의 자립1년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혼자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 외에 나는 나 같은 사람들이 고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고아가 되면 불편한 점이 많다.
어떤 게 제일 불편하냐면...
내가 많이 아플 때 불편하고, 내가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다.
 
가족이 있으면 엄마한테 "이거, 이거 해줄래?"하고 말한다.
그러면 엄마는 자기 딸이니까 해주겠지?
엄마는 나를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데리러 오지 않겠지?
 
나는 죽지 않았다.

☞ 편집자 주  ____________ 이 시는 허인아씨가 장애인거주시설에  있을 때 쓴 시입니다.

 

 


 

9살에 들어간 장애인시설에서 33년만에 세상속으로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한 허인아씨(42)가 밝게 웃고 있다.

 

밖으로 나갔던 동료언니의 권유로 결심을 했다. 밖의 세상이 궁금했고 새로운 많은 것들이 기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두려움과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암막과 같은 막막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2015년 3월 허인아씨(42)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구로동에 위치한 자립생활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33년만의 움직임이었다.

장애인주거시설에 처음 들어선 것은 9살. 어머니에 의해 맡겨졌다. 집에는 두 명의 동생도 있었지만 허인아씨는 그 뒤로 가족의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9살에 시설로, 가족 연락두절
뇌병변이 심한 허인아씨는 와상장애로 누워 지낸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하는 것 외에는. 발음마저 불명확하여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인내를 필요로 했다.

시설(이하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하루는 지루하고 길었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간은 혼자 누워 있어야 했다.  볕이 좋은날 외출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기회는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보행이 가능한 장애인들의 자유로운 외출을 보며 곳곳하게 서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원망했다. 그렇게 침상위에서 누워 있어야 했던 긴 시간,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다. 동생들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연락 한번 없는 엄마가 원망스러워 인아씨도 집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인아씨는 시인을 꿈꾼다. 침상에 누워서도 시를 쓰고 싶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노트에 적었고, 자신의 시를 다시 읽고 싶어 한글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인아씨의 장애가 심해 학습이 불가능하다며 외면했다.

시설에서는 보호를 받을 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만나는 이도 없었고, 외출도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들이 잊혀져가고 있었다. 분명 세상 속에 살고 있었지만 세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세상이 궁금했고, 그 세상 속 내 자신의 모습이 궁금했다,
 
내게도  날개가 생겼어요
자립생활주택으로 이사 하는 날, 좋았다. 날개가 펼쳐진 듯 좋았다. 다행이 혼자가 아니었다. 김은지(28, 지적장애)와 함께 살게 되었고, 활동보조인들이 매일 집으로 와 손발이 되어 주었다. 만나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대화에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외롭지 않았다.

이사하고 처음으로 은지씨와 치킨집에 갔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았던 그 곳에 내가 앉아 있었다. 미세하지만 세상 옆으로 다가서는 것 같았다.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지만 인아씨에게는 하루하루가 늘 새로운 경험들이다.

구로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인아씨와 같이 자립하고자하는 장애인들에게 은행업무보기, 장보기, 산책하기, 편의시설 이용하기, 이웃과 만나기 등과 같은 일상생활 체험과 다양한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으로 인해 고립된 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생활권이 보장받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다양한 문제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키워 스스로 선택한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추구한다.

인아씨는 현재 한글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자신의 시를 읽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며 다양한 세상을 만나고 있다. 아직은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인아씨. 그러나 하루하루 경험들이 모여 재미난 일들을 꿈꾸고 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 믿는다.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기 위해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라고 안쓰러운 마음에 도움을 주거나,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선을 그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웃들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듯 장애인들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잡아 주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가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이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같이 우리 사회속의 일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구로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 이동수씨는 말한다.

지역 공동체를 꿈꾸는 우리는 지금 잡고 싶은 손만을 잡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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