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6월 1일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그런데 온통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쏠려 있다 보니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방의원 선거구 획정조차도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광역의원 선거구와 기초의원 정수를 확정해야 하는 국회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대통령 선거 못지않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지방선거이다. 싫든 좋든 사람들은 자기 지역의 공기와 물을 마시고, 숲과 하천을 걷고, 지역의 어린이집ㆍ유치원, 학교ㆍ복지시설ㆍ도서관ㆍ문화시설ㆍ병원ㆍ공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지역경제, 지역일자리도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농촌ㆍ농업ㆍ농민에 관한 정책을 지방자치단체가 어떻게 수립하고, 지역의 생활환경을 어떻게 잘 지키느냐에 따라 주민들의 삶이 달라진다.
■ 이렇게 지방자치가 중요한데도, 대한민국의 지방선거 제도는 세계 최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마디로 '거대양당에 의한, 거대양당을 위한' 선거제도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지방자치가 정착된 나라들과 비교하면, 문제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첫째, 대한민국처럼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광역지방자치단체장부터 기초지방의원까지 하루에 지방선거를 하는 예를 찾기 어렵다. 다른 나라들을 보면, 각 지역마다 지방선거 날짜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주민들이 투표를 할 때 국가단위 정치의 분위기에 휩쓸릴 여지가 적고, 지역에서의 정치활동을 평가기준으로 해서 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좋은 지역정치가 이뤄지는 나라일수록 다양한 정당과 후보자들의 당선가능성을 보장하는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독일 등 유럽 대륙의 많은 나라에서는 지방선거까지 비례대표제로 한다. 지방의회 의석도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정당들이 지방의회에 들어갈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비례대표제는 아니지만 대선거구제로 기초지방의원을 뽑기 때문에 다양성을 보장하는 효과가 있다.
가령 20명의 지방의원을 뽑는 기초지방자치단체라면, 그 지방자치단체 전체를 선거구로 해서 1등부터 20등까지가 당선되는 방식이 일본의 기초지방의회 선거방식이다.
셋째, 많은 국가에서는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내는 지역정당(local party)이 인정된다. 지역정당은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정치결사체이다.
독일에서는 유권자단체라는 이름으로 선거에 참여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에도 다양한 지역정당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지역정당을 제도적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외에도 대한민국의 지방선거는 거대정당에게 유리한 것들 투성이다. 후보기호도 거대정당 후보들이 무조건 1번, 2번을 받는다. 선거비용도 거대정당 후보들은 보전을 받고, 소수정당 후보들은 보전받기 어렵다.
■ 이런 식의 선거제도를 만든 것은 거대정당들이 장악한 국회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지방선거제도를 '거대정당에 의한, 거대정당을 위한' 선거제도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런 식의 선거제도는 결국 거대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선거풍토를 만들었다. 그래서 지방선거 때만 되면, 어떻게든 공천을 받으려고 거대정당에 줄을 서는 풍경을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공천비리도 발생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인 물'과 같은 지역정치이다. 다양성도 없고, 정책경쟁도 없고, 지역주민들의 의견도 무시되는 지방자치이다.
■ 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만들 주체는 주권자인 지역주민들 뿐이다. 정당기호만 보고 투표하라고 유도하는 거대정당들이 짜놓은 틀을 거부해야 한다.
거대정당 후보들일수록 경계해야 하고, 주민들 편에서 일하려고 하는 소수정당 후보나 무소속 후보가 있다면 각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주권자인 지역주민들이 후보자들에게 정책을 요구하고, 그 정책을 받아들이는지 여부를 공표하여, 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활동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정말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후보자가 있다면 지지하는 운동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