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구로동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차창 밖으로 널따란 잎사귀마다 가을이다. 요행히 의자에 앉은 나는 푸코의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의 앞머리에는 중세의 어느 무렵부터 유럽에서 마침내 나병이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프랑스 출신의 저자는 우선 프랑스의 여러 지방에 걸쳐 엇비슷한 시점에서 나환자들이 마침내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뒤이어 영국과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소개한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둑한 도서관 한 구석에서 두툼한 고문서들을 뒤적거리며 자료를 꼼꼼히 찾고 있을 푸코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갑자기 이 순간이 바로 내가 바라마지 않았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푸코의 학문은 고고학이라고 한다. 옛날 유물이나 유적을 발굴하는 그런 고고학은 아니다. 옛날 사료나 고문서들을 뒤적거려 하나하나의 사실을 파헤쳐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밝힌다는 의미에서 고고학이라 불린다.
잠시 더 그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그렇게 나환자들이 없어졌는데도 유렵에서는 '나환자'라고 하는 이미지 혹은 의미는 매우 중요하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 나환자들은 바로 신의 노여움을 받은 존재로 그래서 결국 신을 의미하는 존재가 되고, 이들 나환자들은 그런 신의 노여움을 감수하는 배제와 축출의 상태로 구원을 받는다는 식으로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푸코는 왜 이런 걸 연구하게 된 걸까? 상상을 해보자면 이런 식이다. "나환자들이나 정신병자등은 정상인보다 훨씬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인데, 어째서 저런 사람들을 내몰고 쫓아내는 관습이 우리 안에는 있는 것일까? 왜 그런 것들이 필요하고, 무슨 의미가 있어서 저런 비정상적인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일까?"
불과 얼마 읽지 않았지만 잠시 이해한 바를 다시 적어보자면 나환자나 광인과 같이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신의 노여움을 받은 존재들이니 신이 노여워하는 그 벌을 제대로 받고 속죄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돌보지 않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는 명분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중세 유럽의 사람들은 이런 명분 아래 그런 소수자들을 배제하고 축출해왔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이런 책들이야말로 영감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아무런 의식 없이 전통이나 관습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살아지고 있는 삶, 그래서 숨 쉬는 것처럼 자유로와서 과연 그렇게 내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고, 내쫓고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하는 일상을 다시 돌아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말 그의 책을 읽는다는 사실이다. 철학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없고, 고고학적 연구란 학문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프랑스의 시시콜콜한 지명과 사람이름이나 건물이름이 어찌나 많아 나오는지 책을 읽고 있노라면 뇌 속에 불이 들어왔다 나왔다 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과연 철학자답게 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제대로 알 수도 없이 수수께끼처럼 이야기를 써놓았으니 사람들 말로 '베개로 써도 좋을 만큼 두툼한 이 책'을 읽는 것을 내년도 목표로 삼아도 좋을 만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역사적 사실들이 정말 지금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나를 알고 싶다는 일념으로 도전 또 도전이다.
버스에 오르기 직전에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장의 뒤편에 서 있었다. 역사를 두고 아니 역사책을 두고 말이 많다. 구로동에 이르러 책을 덮으며 "왜 매번 이 지경일까?" 갑자기 한숨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