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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우리동네이야기9] 명동 부럽지 않던 그곳, 가리봉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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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우리동네이야기9] 명동 부럽지 않던 그곳, 가리봉시장
  • 윤용훈 기자
  • 승인 2014.07.14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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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시장에 밤이 깊으면/ 가게마다 내걸어 놓은 백열전등 불빛 아래/ 오가는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마다/ 따스한 열기가 오른다. (이하 중략)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가리봉 시장을 찾아/ 친한 친구랑 떡볶기 500원어치, 김밥 한 접시,/ 기분나면 살짜기 생맥주 한 잔이면/ 스테이크 잡수시는 사장님 배만큼 든든하고/ 천오백원짜리 티샤쓰 색깔만 고우면/ 친구들은 환한 내 얼굴이 귀티난다고 한다. (이하 중략)  


 시인 박노해가 1970~1980년대 구로구 가리봉시장을 배경으로 부근 공장노동자들의 삶의 애환을 1984년 발표한 총 6연으로 구성한 자유시 ‘가리봉 시장’이다.

이같이 구로공단의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 가리봉시장은 ‘명동’에 버금갈 정도로 오가는 사람들이 부딪힐 만큼 붐볐고 번성했다. 현재 가리봉시장 옆 부지인 주차장과 고물상 자리이다.

가리봉시장은 1976년에 생겨나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에는 연면적 7,000㎡규모의 4층 건물 한 동에서 1,2층에는 의류도소매 상점 중심의 상가였고, 3,4층은 창고나 주거지로 사용됐다고 한다. 또 이 상가 주변골목에는 야채 등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상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지금의 가리봉시장은 가리봉시장 상가가 없어진 대신 이같이 생긴 골목시장이 자연히 커져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가리봉시장은 160여개에 이르는 옷가게 중심의 등록 시장이었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옷가게 못지않게 사람들로 붐볐고 장사가 잘돼 돈 통에서 돈을 셀 수 없을 정도로 호황이었다. 사람도 넘치고 돈도 넘쳤다. 고된 노동과 저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에 허기지고 지친노동자들의 고향의 안식처와 같은 인정 많은 시장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번창하던 시장은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부터 서서히 쇠퇴하고, 시장재개발 얘기가 나오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정국으로 수출기지였던 가리봉 공단이 외국 바이어가 끊겨 수출이 중단되거나 줄어드는 경기불황이 지속되면서 근로자들도 일자리가 없어져 지방이나 타 지역으로 이사가는 바람에 시장도 점점 위축되는 가운데 80년 중후반부터 부동산 바람이 불면서 재개발 애기가 거론됐다.

이 때 나선 건설사가 당시 기아차동차의 계열사인 기산건설이다. 상인중심의 조합이 결성돼 재건축조합장과 이 건설회사 이 모 대표 간에 20층 미만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짓는다는 쌍방계약을 맺었지만 공증 등 책임 있는 공인된 정식계약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기에 건설회사 사장이 선거관련 공금횡령 등과 관련한 검찰 조사 등으로 계약이행은 흐지부지되고 시장재개발에 지역에 포함됐던 인근상가 및 지주들이 터무니없는 땅값보상 요구로 지연되면서 재개발 자체가 무산됐다고 지역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재건축이 시작도 되기 전인 99년경에 이미 시장건물은 헐어져 입주했던 상인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시장건물자리의 대지에는 현재도 기존 시장 건물의 입주상인 수십 명의 지분들로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번창하던 시장건물이 하루아침에 없어짐에 따라 자연히 야채 등 먹을거리를 팔던 옆 골목시장에 노상들이 하나 둘 씩 더 늘어 가면서 현재의 가리봉 전통시장으로 형성된 것이다.

가리봉시장 초창기부터 기름 장사를 해왔고, 현 시장자리로 옮겨온 최낙관 씨는 “그 당시 기산건설과의 건설계약이 제대로 추진되고 인근 지주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대규모의 시장을 형성될 수 있었는데 기회를 잃어 아쉽다”면서 그래도 현 시장이 생성돼 지금껏 명맥을 유지해온 것도 다행이라고 했다.

현재 가리봉시장은 공단의 디지털화로 대형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서고 그 일대가 가리봉재정비촉진지구에 묶여 수년간 개발이 안 된 데다 중국교포의 중심생활권이 되면서 기존 한국지역주민 대부분이 시장 발길을 끊고, 대신 50여개의 점포에선 중국 상품 및 생필품, 식품 등을 주로 취급하며 중국교포 및 한족이 주 고객이 된 시장으로 변모했다.

현재 상인들은 시장번영회가 하루빨리 구성되어 인정시장으로 등록돼 전통시장현대화사업을 추진해 옛 가리봉시장처럼 활성화된 시장을 꿈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장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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