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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듯 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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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듯 시를 씁니다"
  • 김철관
  • 승인 2002.1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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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내면의 방을 찾아가는 황홀한 방황의 기록을 진솔하고도 낯선 언어로 선보인 강신애(姜信愛)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이 최근 인터넷 뉴스 등에 연일 보도되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뉴스 등을 포함, 매체 영향력이 있는 오마이뉴스 '책동네' 코너에는 이 시집을 '최근의 주요 뉴스'로 선정해 게재하고 있다. 인터넷한겨레, 엔지오타임스, 대자보, 바른지역언론연대 등 인터넷 매체에서도 메인 뉴스로 시집을 소개했다. 또 최근 창간한 시 전문지 '오늘의 젊은 시인을 찾아서' 난에서도 강 시인을 인터뷰했다. 은 강 시인이 겪은 삶의 내밀한 고통과 희열을 독특한 시상으로 전개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1부에서 4부로 나눠 56편의 시가 실려 있는 시집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감동과 시적 매력에 흠뻑 젖을 수 있다. 특히 지리멸렬한 일상의 이야기를 그로테스크한 기법으로 그려낸 '곰팡이국'이나, '임마누엘 집', '지하실의 수기' 등과 현대인의 욕망의 허구와 그 끝을 냉정한 시선으로 보여준 '잔해도시' '절름거리는 봄' '풍선 인간' 등의 시에서 건조하고도 삭막한 삶을, 그에 어울리는 건조하고 삭막한 문체와 절제된 시어로 그려내고 있다. 그와 대척적인 입장으로 그려진 숲과 관련한 시들은 이러한 삭막한 삶을 견디는 방법으로서 또한 욕망과 혼돈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흔들리지 않고 그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방법으로서 시집 여기저기 맑은 향기를 뿌리며 출몰한다.



그녀가 말하는 이란 무슨 뜻일까? 기자는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서랍은 추억이자 과거를, 방은 현실의 방이자 安住의 방이고 또 한 겹의 방이란, 누구의 침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저 자신에 몰두하여 또 다른 그 무엇을 창조(여기서 창조란 '시'이면서 새로워지는 영혼을 의미)할 수 있도록 하는 신비한 숲이라는 울타리에 둘러싸인 공간을 의미합니다. 즉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면서 통시적인 존재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뜻에서 이란 시집 제목을 정했습니다"라고 전했다.



한마디로 강 시인의 시집은 자신과 함께 독자들이 가야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 듯하다. 이런 이유에서 그를 이 시대의 진정한 시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의 내면을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켜낸 보기 드문 시집이라는 것이 대부분 독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녀는 경기도 강화에서 출생해 세 살 무렵 서울로 온가족이 이사온다. 그는 학창시절, 그림을 즐겨 그리면서 릴케, 하이네, 박인환, 이상화…… 이런 시인들의 시를 즐겨 암송하기도 했다.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상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이 그녀 인생의 첫 좌절이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색채와 구성, 명암 등을 자연스럽게 시속에서 구현하며 그림을 그리듯이 시를 쓰고 있다. 그녀 시에서 넘쳐나는 색채와 구성미, 구상과 추상의 아우름 등은 아마 이런 그녀의 미술적 자질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고교를 졸업하고 3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문학사상 등을 정기구독 했다. 그러나 자유로운 영혼을 타고난 그녀가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생활과 야근을 밥먹듯 해야 하는 직장에 적응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소설가의 꿈을 꾸고 문예창작과를 선택했으나 두 번째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한 학기를 끝으로 대학을 그만둔다. 무역회사 등을 다니며 틈틈이 소설을 습작하다 어느 순간, 압축적이고도 즉흥성이 강한 시가 더욱 자신의 성향에 맞음을 깨닫고 시를 쓰기 시작한다. 96년 '오래된 서랍' 등으로 문학사상에 등단하게 되고 6년 만에 첫 시집 을 내놓는다.



시집 말머리를 장식한 천양희 시인은 "은 새벽을 향해 모든 문을 열어 놓는다. 맘속에 우물 하나 품고 시의 두레박을 오래오래 던진다. 우물을 들여다보다 물의 깊이까지도 길어올리려는 시인. 시인은 시로써 세상에 남는다. 남아야 한다"고 했다.



61년 출생한 그는 현재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서 古稀를 넘긴 홀어머니와 함께 살며 아이들에게 독서 논술 글쓰기를 가르치며 두 번째 시집을 구상중이다.

여기서 어머니와의 일상을 좌(左) 우(右)의 개념으로 재미있게 표현해낸 시 한 편을 소개할까 한다.









강신애





어머니의 방과

나의 방은

쌀이랑 과일이랑* 가게를 중심으로 대칭이다



어머니는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딸의 불안을 감시하러 들락거리시고



나는

껍데기뿐인 생을 공글려

어머니의 불안을 보살피러 들락거린다



화투로 하루의 운을 떼보는 母와

신문 '오늘의 운세'를 보는 女



발이 상처나면 쉽게 썩어버리는 당뇨인데

예쁜 구두만 고집하는 母와

거꾸로 매달려 살아도

뾰족구두만 고집하는 女



쌀이랑 과일이랑 가게에서 대칭인 무료함

쌀이랑 과일이랑 가게에서 대칭인 공범자

쌀이랑 과일이랑 가게에서 대칭인 일몰의 자화상



너무 사랑하여

千歲不變,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알 같은

판박이의 경지



듬성듬성 상처난 어머니의 자궁과

잉태를 꿈꾸는 나의 자궁도 대칭이다



*쌀이랑 과일이랑 : 가게이름



지난 21일 오후 강 시인을 만나 일문일답을 했다. 그의 차분하고 진솔한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 시집 을 펴낸 소감은?

▲시집 후기에 제 소감을 이야기해 놓은 것 같은데요 어찌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제 이야기를 풀어놓아 발간 초기에 벌거벗은 듯한 부끄러움과 함께 어디론가 숨고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요. 저는 제 시가 특별히 독자들에게 어떤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거나 그런 얘긴 못하겠습니다. 그저 제 느낌에 충실했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에 만족할 뿐이죠.



- 요즘 하루 일과가 궁금한데요.

▲먼저 아침시간은 대게 시에 바칩니다. 가장 정신이 맑은 시간을 시에 할애하죠.

좀 지치면 음악을 듣고 그 다음부터 신문을 훑고 책을 보고 그러죠.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는 시간에도 비슷합니다. 그리고 가끔 영화를 보러 나가죠.



- 자연, 가난, 가족 등 자신과 지근거리에 있는 생활 속 시는 언제 구상했나요?

▲특별히 구상하는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요 매순간 상황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피카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늘 보는 일상을 새롭게 볼 수 있을 때 작가는 비로소 자유로운 형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되풀이되는 일상만큼 우리를 지루하게도 또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봅니다. 낯설게 보기가 제겐 항상 화두입니다.



- 숲, 낙엽, 홍시, 옹달샘 등 자연을 이야기한 시어들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그것은 제게 있어 원초적 체험일 겁니다. 아버지께서 자그마한 목재소를 하신 적이 있는데 유년기에 아버지 겉옷에, 머리칼에 뿌옇게 묻은 먼지와 톱밥을 털어드리던 기억, 어두운 목재소 구석에 겹겹이 세워져 있던 나무틈새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생나무 냄새가 너무 좋아 한참을 그 속에서 나오지 않고 놀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강화가 고향이지만 부모님 고향이고 사실 저는 고향이 없는 사람이죠. 그 자리에 숲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앞으로 어떤 시인이 되고 싶나요.

▲ 보들레르가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울음통이 있었기 때문이죠. 제 개인의 고통을 세상의 고통 속에서, 세상의 고통을 제 개인의 고통 속에서 느끼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시, 그런 시를 쓰는 것이 제 바람이지요. 어려운 길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현실과 환상이 그물처럼 엮어져 꽉 막힌 현실의 벽을 넓히고 그 틈으로 저 너머의 세계를 꿈꾸고 숨쉴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 강신애란 이름은 누가 지었나요?

▲ 아버지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사랑을 믿는다'는 의미인데 아버지께서 아마 시인이 되라고 이런 이름을 지어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웃음)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시인이 되어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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