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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의 추억 "그때가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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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의 추억 "그때가 좋았는데"
  • 성진아 시민기자
  • 승인 2013.06.03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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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류초등학교앞 화랑문구 김양일씨에게 듣는다

아이들이 달아 놓은 장부의 금액을 치른 손님이 빡빡해진 유리문을 밀고 돌아가자 문방구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 조용하다. 더 이상 찾아올 이가 없어 보인다. 맞벌이 가정 아이들의 경우 간혹 외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80~90년대 학교 앞 문방구
1980~90년, 그때는 50~60명의 외상장부가 있었다. 4평 남짓한 가게와 창고를 겸한 자그마한 방이 딸린 화랑문구는 아침 등교시간이면 문이 닫힐 틈도 없이 아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벽 한쪽에 매달린 청회색 외상장부들은 검정색철끈에 묶여 그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온수동, 천왕동, 항동, 개봉동, 오류2동 일대의 학생들을 수용했던 오류초등학교는 교실 부족으로 2부제로 운영될 만큼 학생 수가 많았다. 오전반과 오후반이 바뀌는 시간이면 등굣길은 인산인해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이들의 등하교가 끝나면 한가할 것 같은 오류동 거리는 시장 사람들이 활기의 바통을 받아갔다. 교통이 좋아 인근 주민들까지 이용하던 터라 발길이 끊이지 않는 만큼 등하굣길만큼 사람들로 늘 북적북적 했다.

작은 오류동교회(오류초등학교 옆 위치)뒤로 시작되는 산은 오류초등학교를 둘러쌌다. 그 산언덕 곳곳에는 판자 집들이 즐비했고, 그렇게 매봉산은 가난한 이들에게 보금자리를 허락했다. 
 
 ◆세월 따라 사람도 변해가고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들이 선호하는 장난감도 바뀌었다. 그 시절 여아들에게 최고의 인기 있는 장난감은 다름 아닌 두꺼운 도화지에 칼라로 인쇄된 종이 인형이었다. 남아들에게는 권투글러브나 야구용품이 인기였다. 문방구 벽에 줄줄이 붙어 있는 종이인형과 두툼한 글러브는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형마트와 완구도소매점의 온라인판매로 문방구에서 장난감을 찾는 아이들은 없다. 어쩌다 찾는 이들을 위해 몇 가지는 진열해 놓지만 대부분은 매일 매일의 먼지를 세월처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다.


그래도 추억을 찾아오는 이가 있어 위로와 감동을 받기도 한다. 6년을 꼬박 한 길을 오갔던 어린 소년이 어른이 되어 대구에 정착해 살면서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자녀와 함께 추억을 찾아 방문을 했다. 고맙고 고마웠다. 이럴 때면 문방구를 접지 않고 이어오기를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32개였던 문방구가 이젠 2개뿐

양화점 운영 중 부도로 서산으로 내려가 살던 김양일(71,오류1동) 씨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교육을 위해 서울행을 택했다. 워낙 없는 살림살이라 서울 어느 곳에도 쉽게 정착하기 어려웠다. 살림살이에 맞춰 찾아 들어온 곳이 오류동이다. 오류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시작한 아내와 달리 김양일 씨는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일을 찾아다녔다. 며칠 만에 아내는 코피를 흘렸다. 아내에게 미안해 잠시만 도와준다는 것이 33년째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다.

그 당시 학생수도 많았고, 시험제도가 있어 학용품이며 학습준비물, 전과, 문제집 일체를 판매해 수입이 좋았다. 그렇게 벌어 단칸방도 벗어났고 두 아들 공부도 시켰다. 대학도 보냈다. 장가 보내면서 작지만 집도 한 채씩 장만해 주었다. 열심히 살아왔고 뿌듯했다.

그러나 개인준비물 없는 학교를 만들면서 학생들은 문방구가 아닌 학교 학습준비실에서 준비물을 가져다 쓰게 됐다. 자연히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매출은 크게 떨어져 지금은 임대료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학생들에게는 개인준비물이 없어져 편해졌지만 문방구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각 학교들의 학습준비실 운영으로 동네 문방구는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대형 문구도매업자들만이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그래도 오류동에 살고싶다.

변변한 기술이 없어도 성실하기만 하면 작은 점포라도 운영해, 큰 욕심은 아니더라도 미래를 꿈꾸며 살아갈 수 있었던 시절은 먼 옛날이 되어버린 듯하다.

아무리 버티어도 2~3년 후에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김양일 씨. "그래도 오류동을 떠나고 싶지는 않아. 33년간 살면서 이웃들과 정이 들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나." 오류동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말해주었다.

노후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시설을 묻자 "단지 오류동 시장이 제 구실을 못해 안타까워. 그저 시장이 예전처럼 살아났으면 좋겠어. 예전과 같이 나와 같은 서민들로 북적북적이면 재미있잖아. 그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거고. 뭐 다른 것 없어"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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