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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66] "겁많다는 것은 예측력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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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66] "겁많다는 것은 예측력 때문"
  • 강상구 시민기자
  • 승인 2011.01.31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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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와 수영장엘 갔습니다. 겨울에 실내 수영장에 가서 놀면 재미가 남다릅니다.


 "미루야, 저기 들어가 볼까?" 물 깊이가 아이 가슴 정도까지 닿는 풀장입니다. 아이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풀장으로 들어옵니다. 다른 아이들은 거의 몸을 날리는데, 얘는 그렇게 조심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겁이 많습니다.


 겁 많은 미루는, 그 옆에 있는 좀 더 깊은 풀장에 들어갈 때는 물론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아예 키가 넘는 풀장에 튜브를 타고 들어갈 때에는 아주 익숙해지기 전까지 얼굴이 완전히 굳어 있습니다. 무슨 애가 이렇게 겁이 많나 싶을 정도입니다.


 "우리 애는 겁이 많아."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 반응이 의외입니다.


 "겁 많은 게 좋은 거예요."


 음, 갑자기 기분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그렇지? 겁 없이 뛰어다니다가 다치면 오히려 안 좋잖아."


 원래부터 저도 아이가 겁이 좀 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가 같은 반응을 보여주니까 좋습니다. 그런데 설명 한 가지가 더 이어졌습니다.


 "그런 면도 있고, 또 겁 많은 아이들이 겁이 많은 건 자기가 무슨 일을 했을 때 그 다음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예측을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하는 것이거든요. 머리가 좋은 거지".

 
 오호, 듣고 보니 그럴 듯합니다. 자기 아이는 겁이 없다면서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뭐 크게 자랑할 일은 아니라는 게 또한 이 친구 이야기입니다.


 다행입니다. 겁 많은 게 머리 좋다는 증거라서 다행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자기 행동이 어떤 상황으로 이어질 것인가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는 게 다행입니다. 사리 판단도 할 줄 알고 아마도 남도 좀 더 배려할 줄 아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 날 이후 또 한 번의 토요일.
 이번엔 눈썰매장에 갔습니다. 평지에 아주 아주 작은 눈 언덕이 있는 정도의 눈썰매장입니다. 미루는 여기서 전혀 주저함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놀았습니다. 눈밭에서 구르고 넘어지면서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여긴 확실히 미루한테 위험해보이지 않는가 보다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그 새 겁이 없어졌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루야, 이번엔 이쪽으로 해서 썰매타고 내려가 보자." 새 코스가 조금 더 경사가 완만하고 깁니다.
 "그래!"
 신나게 아빠를 따라서 새로운 코스를 타고 나더니 미루가 이야기합니다.


 "아빠, 여기가 훨씬 재밌다. 안 무섭고." 앗! 이렇게 작은 언덕에서 아무렇지 않게 놀던 미루가 사실은 그 와중에도 좀 겁이 나긴 했었나 봅니다. 예민하고 생각 많은 녀석 같으니라고. 그날 미루와 저는 두 시간 정도 혹한 속에서 길고 완만한 코스로만 줄창 눈썰매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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