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5-01 10:05 (수)
"스크린쿼터 유지해야"
상태바
"스크린쿼터 유지해야"
  • 김철관
  • 승인 2006.02.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상품은 정신적 상품
지난 1월 26일 정부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협상을 벌이겠다는 깜작 발표가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농민들의 반발은 물론이고, 민중연대,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시민사회운동단체들도 연일 졸속추진 중인 한·미FTA협정 반대를 외치고 있다.

분노한 농민단체들은 지난 2일 오전 열린 정부의 한·미자유무역협정 공청회를 격렬한 몸싸움으로 중단시켰다. 정작 국민을 국정에 적극 참여시키겠다는 참여정부가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미국에 동조하면서 일방적으로 국정을 이끌겠다는 발상이 과연 오른 것인가를 묻고 싶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참여정부가 진정 우리의 정부인지 미국의 정부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고통을 안겨주더니 이제 노골적으로 농민들에게도, 영화인들에게도 줄빠다를 치는 강요된 정책을 일갈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하다.

특히 미국이 FTA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146일->73일) 발표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정부는 여론조사와 국내 영화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스크린쿼터를 축소할 어떤 법적 근거도 없다. 일방적인 미국의 요구 때문인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지난해 10월 20일 프랑스에서 ‘문화적표현의 다양성보호와 증진을 위한협약(이하 문화다양성협약)’ 채택을 정면 부인한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148개 국가가 찬성했다. 우리나라도 포함됐다. 문화다양성협약은 현재 국회 비준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내년 6월까지 30개국 이상이 국회 비준을 거치면 같은 해 10월 발효돼 국제법상의 지위를 갖게 된다.

정확히 오는 2007년 10월이면 유엔 인권법과 같이 국제법으로서의 효력이 발효되는 문화다양성협약 6조(자국 내에서의 당사국의 권리) 2항은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수단과 자국 내 가능한 문화 활동, 상품과 서비스가 생산, 보급, 유통이 향유될 수 있는 기회를 적절한 방식으로 제공할 수단을 채택할 권리를 명시해 자국 내에서 스크린쿼터 등 공공문화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런데 문화다양성협약에 동조했던 정부가 서둘러 스크린쿼터 축소를 발표한 것은 문화다양성협약이 국회에 비준되기 이전에 미국과의 양자간 협상을 끝내겠다는 발상이다. 왜냐면 문화다양성협약이 발효되면 미국이 협상조건으로 제시한 스크린쿼터 축소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이 채택된 이후에도 정부는 꾸준히 ‘유네스코 다자간 협약과 FTA 양자간 협상은 별개 문제’라든지 ‘문화다양성협약이 스크린쿼터를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은 사실이나 다른 조약의 권리나 의무를 수정하는 것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을 언론을 통해 줄곧 밝혀 영화인들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바로 그런 정부의 의도가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스크린쿼터 유지는 정부가 찬성한 문화다양성협약에 근거가 마련됐다. 그런데 정부가 찬성한 문화다양성협약을 무시했다. 정부의 문화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반증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눈치 때문에 일관성이 없어진 것이다.

그럼 미국 할리우드가 세계 시장에서 80%이상의 영화를 석권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스크린쿼터 축소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바로 동남아에서 잘나가고 있는 한류열풍을 미연에 차단해야 동남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그들의 이익과 미국의 이데올로기 전파의 수호자인 미국영화를 통해 문화 식민지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영화 같은 문화상품은 일반상품과 다르다. 물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이 개입된 산업이기 때문이다. 일반상풍은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것만 골라 사면 그만이지만 문화산업은 일반상품의 매카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철학과 가치관을 바꿔버릴 정도의 정신에 심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스크린쿼터를 지킨다는 것은 미국식 문화식민지에 대항하고 자국의 영상산업을 발전시키는 큰 원동력이다.

물론 국내 영화산업이 할리우드에 비해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막연한 상식이다. 바로 이런 막연한 상식들이 그대로 여론조사에 반영돼 정부가 그것을 근거로 스크린쿼터 축소 이유를 들고 있다. 하지만 국민인 수용자들에게 정부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무를 갖고 있다.

양적인 성장보다도 내용상의 질적인 성장이라든지, 엄청난 자본을 쏟아 부어 만든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에게 미칠 정신적인 영향이라든지 등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양적인 성장을 질적인 성장과 등치해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과 같다. 한국영화가 몇 년 전부터 국내 시장에서 매년 50%이상을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1월은 70% 정도 성장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은 양적인 흥행률의 성장이다. 자본의 성장이다. 정신적인 면, 내용적 질적인 면에서 진정 한국 영화가 성장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 미칠 할리우드의 정신적 파급효과를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기에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크린쿼터 축소는 아직 때가 이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