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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즐거운 '핑크빛'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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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즐거운 '핑크빛' 그녀들
  • 송지현 기자
  • 승인 2010.07.26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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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204] 고척도서관 생활영어동아리

 

 도서관마저 쉬는 수요일 오전, 한여름 녹음이 울창한 고척도서관 뒤뜰로 'thank you' 'you're welcome' 소리가 새어 나온다. 도서관 1층 행복어울림방 창문 틈새로 흘러 나오는 맑고 또랑또랑한 소리들. 50대 중년의 아줌마들부터 돋보기를 쓴 60~70대 할머니들까지 열대여섯 명이 영어회화에 심취해 있다.

 


 이들은 2008년 첫 모임을 가진 이래 3년 동안 매주 수요일, 생활영어를 배우고 있는 고척도서관 생활영어 동아리 회원들이다. 배워서 남 주지는 않겠지만, 얼핏 봐도 60~70대가 대부분인 어르신들까지 생활영어를 배우시고 있어 뭐하시려는 걸까하는 궁금증마저 자아낸다.

 "세상이 달라 보여. 영어 간판 읽는 재미가 쏠쏠 혀. 무슨 뜻인지는 고사하고 읽지도 못했으니 얼마나 답답혔겄어." 요즘 길거리에서 넘쳐나는 영어간판에 남몰래 기죽었었다는 김경자(65, 고척1동) 씨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영어유치원 다니는 손자녀석이 며느리하고 쏼라 쏼라 떠드는데,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요즘엔 단어라도 알아들으니 속이 다 시원하던걸." 친구 따라 강남 온다고, 김경자 씨 따라 생활영어 동아리에 들어온 황인선(62, 목동) 씨가 맞장구를 쳤다.

 동아리에 들어온 지 3개월밖에 안된 김순자(69, 고척2동) 씨는 생활영어 배우는 재미는 바로 '요것'이라고 끼어든다. "몇 년 전에 남편이랑 배낭여행 간 적이 있는디, 하나도 못 알아들어 어찌나 속상하던지. 이젠 외국 나가면 인사말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

 생활영어를 배우기 위해 나온 이유들도 다양하다. 이 가운데는 대학까지 나왔어도 생활 영어가 잘 안된다고 생각해 회화반을 찾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영어만이 다가 아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젊어지는 재미'라고 김순자 씨는 덧붙인다. "평소 배우는 것을 좋아해. 그래야 늙지 않고 매일매일 새롭게 젊어지거든. 그런데 마음으로만 목말라하던 것을 배우니 얼마나 행복하겠어."

 영어만 배운다면 3년을 유지해오기는 쉽지 않았을 터. 그 비결은 바로 동아리 지도교사인 이준영(70, 오류1동) 씨라고 모두 입을 모은다.

 창립 때부터 시작해 3년째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 반장 나유미(55, 개봉1동) 씨는 비결을 묻자 "당연히 선생님이죠. 우리는 영어만 배우는 게 아니에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닌 게 아니라 분명히 영어동아리인데 칠판에는 한자가 수두룩이다. 또 이야기는 요즘 아이들과 자녀교육문제 등으로 이어진다.

 "이 모임에 나오면서 눈이 뜨이고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좋은 한시에, 사자성어도 배워요. 또 시사적인 문제도 한 가지씩 얘기해주시니, 저희는 일주일에 잡지 한 권 읽는 느낌이랄까요."

 생활영어동아리의 든든한 버팀목인 잡학박사 이준영 씨는 3년째 이 모임에서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우신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지난 2000년 퇴직한 이후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나눠주고 있을 뿐이라며 동아리 회원들의 칭찬에 손사래를 쳤다.

 "같이 나이 들어 가는데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시고 제 얘기 재미있게 들어주시니 고맙죠. 게다가 이 분들이 가끔 밥도 사주고 음료수도 사주네요"라며 껄껄 웃어 보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금방 잊어버리지만, 여행 다녀와서 한두 마디 써먹었다고 상기된 얼굴로 자랑할 때 저도 기분이 좋아요."
 "ABC부터 배웠는데 나이 들어 익힌 영어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가 어색하고 쑥스럽겠어요. 하지만 우리처럼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면서 정 쌓고 헤어지면 아쉬운 인연이 된 것처럼,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서 쏼라라~ 입이 터지겠지요. 그때까지 우리 모두 잘해보자고요." 이준영 씨의 씩씩한 파이팅에 동아리 회원들은 함박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런데, 이준영 씨는 구로타임즈 취재를 거절하고 싶었다고 살짝 털어놨다. "신문에 나서 사람들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지금 같지 않을 것 같아서요. 지금 우리는 너무 행복하고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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